우주적인 공간 속에 지구라는 공간은 겨우 공깃돌에 불과하다는 것인데, 공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주의 시간 속에 지구의 시간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찰나를 불가에서는 탄지경, 곧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시간이라 한다.
어젯밤에 우리가 밤하늘을 우러러 맨눈으로 바라본 별빛은 수십 광년에서 수백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별이 쏘아 보낸 빛이다. 그러니 우리가 바라보는 그 별빛은 이미 우리가 태어나기도 훨씬 이전에 지구로 보낸 빛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우주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면서도 그 시공을 잊어버리고 좁디좁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숨 막혀 하며 성내고 울고 미워하고 때로는 사랑하기도 하니. 우주적 시공에서 보면, 결국 사람의 시공이란 얼마나 찰나이냐. 그 순간의 삶이 때론 그토록 힘겹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참으로 놀라운 생명 존중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땅에 살았던 옛 어른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었던 마음이었습니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작은 벌레의 생명까지도 소중히 여겼던 마음, 이 마음이 우리네 삶의 자세였습니다.
걷는 일은 탈것들 도움을 받지 않고 내 몸으로만 가는 것입니다. 걷다 보면 내 몸 하나하나가 다 귀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몸무게를 온통 받아 견디는 발도 그렇고 무릎도 허리도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눈, 코, 귀, 입도 마찬가지입니다. 길에서는 온몸을 활짝 열고 사물을 받아들여야 하니까요.
우리는 검룡소에서부터 강을 따라 걷기로 했습니다. 최대한 강에 가까이 붙어서 걷자는 것이죠. 강 옆에 길이 없으면 강물 위에 보트를 띄워 타고 내려오기도 했죠. 그렇게 여주까지 오는 데 보름이 걸리더군요. 여주에 온 강물이 어디까지 가는지도 궁금했어요.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열흘을 더 걸어 김포 보구곶리까지 가서 서해와 합쳐지는 것을 확인했답니다.
걷는 길에선 많은 사물을 만나고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길을 걷는 건 뭔가 참 경건한 일이라는 겁니다. 그냥 길을 따라 걷는 것일 뿐인데요, 아랫배 저 어딘가에서 묵직하게 차오르는 기쁨이 있답니다.
내 눈앞 장애물을 눈 딱 감고 한번 훌쩍 뛰어넘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주변에 널려 있는 길을 걸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