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15일 이후 김대중씨는 나에게 인터뷰 대상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사람이 되었다. 기자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정치인의 생명은 끝난다. 김대중씨의 言行은 지금도 다른 기자들에게는 기사꺼리가 되고 있고 그의 정치적 생명력은 여전하다. 그가 어떤 惡行을 해도 무조건 지지하는 사람들이 建在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 김대중씨는 왜 사는 것일까. 그의 인생의 목적과 보람은 무엇일까?
노태우 전 대통령은 누가 봐도 김영삼씨한테 당한 사람이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이 그를 향해서 욕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만큼 분을 속으로 삭이려 했을 것이다. ... 그런 인물이 선두환 당시 대통령의 뒷받침을 받아 대통령이 되고 부드러운 얼굴로 한국의 민주주의 실천을 주도했다. 역사는 아마도 대통령 노태우를 지금보다 훨씬 높게 평가할 것이다.
1980년대에 나온 <김대중 어록집>에는 그가 한국 사회를 계급투쟁적, 또는 계층갈등 적 시각에서 분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낳게 하는 말들이 많이 등장한다. 하나만 소개한다. "경제건설이란 이름 아래 국민은 세계 최고율의 조세부담을 강제당하고 있는데 농촌과 근로자의 생활상태는 날로 궁핍해지고 중산계층의 생활은 항시 불안 속에 있다."
전두환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약 4년에 걸친 귀양살이와 옥살이를 한 것도 길게 보면 한국의 민주화를 입증한 사건일 뿐 아니라 그의 인생을 풍요롭게 한 것이 아닐까. 그런 수난이 없었더라면 전두환은 양지바른 길을 질주하다가 인생의 쓴맛과 참맛을 보지 못하고, 그래서 인생을 헛살고 끝냈을 것이 아닌가.
전두환의 인생 역전,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의 변전, 이게 모두 한국 현대사의 위대한 발전과 복잡성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약 20년간에 걸쳐 쓴 글들을 모아 내는 책에 <일류국가기행>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보니, 그러면 누가 일류국가를 만드는가 하는 질문이 나올 것 같다. 나의 답은 이렇다. "위대한 장돌벵이들, 즉 싸울 줄 아는 장돌뱅이가 일류국가를 만든다. '살찐 돼지' 같은 한국의 기업인들이 '야윈 늑대'의 정신을 갖게 될 때 한국은 신라같은 일류국가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