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원하지 않았던 삶을 십 년 넘게 살아냈다. 원하지 않았지만, 가장 치열했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 책은 그것에 관한 글이다. 어두운 듯하지만 밝고, 얼음장 같으나 근원적 온기가 넘치는 이야기.
이 시기에 나는 환상을 가지고 대하던 인간들에 관한 시선을 성큼성큼 조정해야만 했다. 오래 몰입했던 문학을 통해서도 이처럼 큰 진보인지 퇴보인지를 경험하지 못했다.
나는 이제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다. 만만찮은 내 나이를 생각하면 더 일찍 이 말을 해야만 했다.
“내 삶에 훈수를 두지 마세요.”
십 년 넘도록 ‘선을 넘은’ 나에게 여러 번 경고했던 사람들을 위해 이 통쾌한 말을 한 번 해볼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나의 역설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는 꽤 재치 있고 너그러운 사람일 터이다.
2022년 가을날에
이 책을 읽을 친구들 중에는 태어나서 한옥을 한 번도 제대로 못 본 친구도 있을 것 같구나. 반대로 한옥에서 태어나 계속 한옥에서만 살면서 아파트에서 사는 것을 꿈꾸는 친구도 있을 테고. 또 이 책에 나오는 한 친구처럼 온 가족이 모여 같이 살지 못하는 친구도 있겠지?
너희들이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든 힘내라. 세상은 너희들을 사랑한단다. 물로 나도 너희들을 사랑한다!
지하철 속에서, 반원 버스 속에서, 밀리며 출구를 찾지 못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몸만 부딪치는 (아, 정신은 다 어쩌고) 밀폐된 공간 속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계, 그런 세계가 있다면, 정녕 있기만 하다면, 이곳의 몸과 마음이 이보다는 편하리라.
내게 서툰 사랑의 흔적들을 남길 수 있게 해 준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1991년 3월
나는 최민식 선생의 작품을 통해 내가 요즘 우리 사회에서 느끼는 불안이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최근의 경제적 위기와 그로 인해 예견되는 더 나쁜 상황을 무서워하기에 앞서 그 상황을 꿋꿋이 견뎌낼 자신이 없는 심약한 자기 자신을 무서워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우리들이 가난에 낭만이나 환상을 가지지 않을 만큼 현실적이 되었고, 고통을 화두로 삼지 않을 만큼 영악해진 탓인 듯합니다.
최민식 선생의 사진은 인간의 불행이라는 악성 바이러스를 꿋꿋이 이겨내게 하는 항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사진이 가진 힘이자 덕목 중 하나이지요. 그가 치열하게 사유하며 선택한 세계는 많은 부분이 어둡고 암울합니다. 그러나 그 세계와 맞선 그의 시선은 더없이 따뜻합니다.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뛰어다니며 세상의 부조리와 맞서되, 그는 전투적인 사람이 아니라 온화한 사람입니다. 그는 인간의 불행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한 덩어리로 뭉뚱그려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온 것이 아니라 그것의 세세한 결을 느끼며 오랜 세월 혼신의 힘으로 창작에 전념해온 사람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그의 작품세계에 빠져들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불행을 바라보던 기존의 시선이 수정되며 어떤 고통과도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배짱이 생깁니다.
이 책을 읽을 너희들은 거의가 하루를 짧게 느끼며 생활하겠지? 그것은 너희가 행복하다는 증거야. 이 이야기 속의 동희처럼, 행복할 때 다른 친구가 힘든 일을 겪고 있지는 앟은지 가끔 눈길을 돌려 보렴. 꼭 친구가 아니더라도 주변의 누군가가 힘든 일을 겪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렴. 몸이 불편한 사람, 울고 가는 어린 아이, 노점상 할머니, 길 잃은 강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