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중국의 인구는 14억에 이르렀고, 중국은 G2가 되었다. 이 느닷없는 사실에 세계인들이 놀라고, 중국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 예상을 40년이나 앞당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흔히 말하는 ‘기적’이 아니다. 중국 전 인민들이 30여 년 동안 흘린 피땀의 결실이다. 우리의 지난날이 그렇듯이.
이제 머지않아 중국이 G1이 되리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중국이 강대해지는 것은 21세기의 전 지구적인 문제인 동시에 수천 년 동안 국경을 맞대온 우리 한반도와 직결된 문제이다.
중국인들이 오늘을 이루어내는 동안 겪은 삶의 애환과 고달픔도 우리의 경험과 다를 게 무어랴. 그 이야기를 두루 엮어보고자 했다.
연간 40조를 넘는 사교육시장의 병폐는 누구의 책임일까. 그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정부의 책임이고, 교육계의 책임이고, 사회의 책임이고, 학부모의 책임이다. 이제 이들 모두가 똑같이 공동책임을 지고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으면 우리의 내일은 점점 나락의 길로 치달아갈 수밖에 없다.
고등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된 내 손자들이 사교육시장의 거센 파도에 대책 없이 휩쓸리는 것을 보면서 이 소설을 쓰는 심정은 아들을 논산훈련소에 데려다주고 돌아올 때의 심정과 그 비감함이 어찌 그리 같은가.
인생이란 추억 만들기다. 그 추억을 섬세하게 그리고 오롯하게 엮어낼 수 있는 것이 사진이다. 작가로서의 삶을 70을 넘겨 그 중반으로 가고 있으면서 이제는 추억을 더듬을 만한 세월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들을 간추리고, 그 아래 설명 아닌 ‘추억’의 조각들을 짜맞추려고 해보았다.
몇 년 전에 엮었던 『황홀한 글감옥』이 글로 보는 ‘조정래’의 자서전이라면, 이번의 『길』은 사진으로 보는 자서전이 아닐까 한다.
피할 수 없는 사회 변동은 도시 팽창과 함께 수많은 문제를 야기시키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도시 빈민의 양산이었습니다.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생존 조건도 보장받지 못한 수많은 도시 빈민들은 시대의 비극이고, 시대의 슬픔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통증을 작가로서 외면할 수 없어서 ‘무작정 상경 1세대’의 얘기를 쓴 것이 ?비탈진 음지?입니다.……‘굶주리는 사람이 단 하나만 있어도 그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시인 릴케의 고통스러운 읊조림입니다. 하물며 소설가로서 오늘의 우리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겠습니까. 독자들 또한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원입니다. 『비탈진 음지』를 읽을 필요가 없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고대합니다.
언제 어느 때나 문학은 인간에 대한 탐구다. 역사는 그 안에 포함된다. 인간을 응시할수록 거듭하여 인간에 대한 질문과 마주 서게 된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사람이란 과연 믿을 수 있는 존재일까...?
사람과 짐승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과 회의에 대한 응답은 어디에 있을가. 그 응답이 없거나, 또는 해득하기 어려운 추상이어서 종교와 철학과 문학은 그나마 존재하게 되는 것인가.
일찍이 이 세상 사람들은 자유 평등 평화를 인류의 공동선이라고 내걸었다. 얼마나 아름답고 인간적인 이상인가. 그 깃발은 20세기 인간들의 이성과 지성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실현될 가망이 아득한 영원한 환상인지도 모른다. 그 아름다운 깃발 아래서 사람들은 지난 백년 동안에 일억 명을 서로서로 살육했던 것이다.
빅토르 위고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하라'고 했다. 그와 똑같은 정신으로, 전쟁을 찬양한 작가는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의 21세기는 또 어떻게 될까. 이 지구상에는 20세기와 똑같이 소수의 강대국들과 다수의 약소국들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노르망디 전선에서 미 공수부대에 최초로 잡힌 '나치 군복을 입은 네 명의 동양인'은 바로 '한국 사람'이었다. 미국 역사학자 스티븐 앰브로스는 그 사실을 그의 저서 에서 밝히고 있다. 그리고, SBS는 특집 다큐로 그 사실을 추적해보고자 했다. 이 작품은 그 프로그램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음을 밝혀둔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5천 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동안에 천 번쯤 침략을 당했다고 합니다. 평균 5년에 한 번 꼴로 다른 힘센 나라들의 침략을 당했으니 우리 민족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고달팠겠습니까. 그것이 약소민족의 슬픔이고 비극입니다.
그런 험난한 역사 속에서 그래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민족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켰던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분들을 위인으로 받들어 우러르고, 책으로 엮어 읽으며 그 희생을 되새기고 본받고자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가 밝고 튼튼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쓴 위인전들은 청소년들의 읽을거리만은 아닙니다. 어른들이라고 해서 위인들의 생애를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청소년 여러분들의 부모님과 더불어 이책들을 읽고 토론을 한다면 더 유익하고 효과 큰 독서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만이 아니다. 미래의 설계가 또한 역사다. 우리는 자칫 식민지시대를 전설적으로 멀리 느끼거나 피상적으로 방치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그러나 민족분단의 비극이 바로 식민지시대의 결과라는 사실을 명백히 깨닫는다면 그 시대의 역사를 왜 바르게 알아야 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은 나라를 빼앗기게 된 어지러운 상황이 시작되면서부터 세계 여러 나라로 떠돌아야 했다. 나는 그 자취를 일일이 찾아다녔다.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동남아 일대, 그 지역들은 자그마치 지구의 절반에 이르렀다. 우리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서 그 지역들이 전부 <아리랑>의 무대가 되었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피흘린 모든 사람들의 공은
공정하게 평가되고 공평하게 대접되어야 한다”
흔히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반만년인 5천 년이라고 한다. 앞으로도 우리 민족의 삶은 5천 년 이상 장구하게 뻗어나갈 것이다. 한 인생을 60년으로 볼 때 1만 년의 세월은 영원이라 해도 과장일 것이 없다. 1만 년의 민족사 속에서 분단대립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또한 조국은 영원히 민족의 것이지 무슨무슨 주의자들의 소유가 아니다. 그러므로 지난날 식민지역사 속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피흘린 모든 사람들의 공은 공정하게 평가되고 공평하게 대접되어 민족통일이 성취해 낸 통일조국 앞에 겸손하게 바쳐지는 것으로 족하다. 나는 이런 결론을 앞에 두고 소설 『아리랑』을 쓰기 시작했다. 그건 감히 민족통일의 역사 위에서 식민지시대의 민족 수난과 투쟁을 직시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피흘린 모든 사람들의 공은
공정하게 평가되고 공평하게 대접되어야 한다”
흔히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반만년인 5천 년이라고 한다. 앞으로도 우리 민족의 삶은 5천 년 이상 장구하게 뻗어나갈 것이다. 한 인생을 60년으로 볼 때 1만 년의 세월은 영원이라 해도 과장일 것이 없다. 1만 년의 민족사 속에서 분단대립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또한 조국은 영원히 민족의 것이지 무슨무슨 주의자들의 소유가 아니다. 그러므로 지난날 식민지역사 속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피흘린 모든 사람들의 공은 공정하게 평가되고 공평하게 대접되어 민족통일이 성취해 낸 통일조국 앞에 겸손하게 바쳐지는 것으로 족하다. 나는 이런 결론을 앞에 두고 소설 『아리랑』을 쓰기 시작했다. 그건 감히 민족통일의 역사 위에서 식민지시대의 민족 수난과 투쟁을 직시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만이 아니다. 미래의 설계가 또한 역사다. 우리는 자칫 식민지시대를 전설적으로 멀리 느끼거나 피상적으로 방치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그러나 민족분단의 비극이 바로 식민지시대의 결과라는 사실을 명백히 깨닫는다면 그 시대의 역사를 왜 바르게 알아야 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은 나라를 빼앗기게 된 어지러운 상황이 시작되면서부터 세계 여러 나라로 떠돌아야 했다. 나는 그 자취를 일일이 찾아다녔다.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동남아 일대, 그 지역들은 자그마치 지구의 절반에 이르렀다. 우리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서 그 지역들이 전부 <아리랑>의 무대가 되었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만이 아니다. 미래의 설계가 또한 역사다. 우리는 자칫 식민지시대를 전설적으로 멀리 느끼거나 피상적으로 방치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그러나 민족분단의 비극이 바로 식민지시대의 결과라는 사실을 명백히 깨닫는다면 그 시대의 역사를 왜 바르게 알아야 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은 나라를 빼앗기게 된 어지러운 상황이 시작되면서부터 세계 여러 나라로 떠돌아야 했다. 나는 그 자취를 일일이 찾아다녔다.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동남아 일대, 그 지역들은 자그마치 지구의 절반에 이르렀다. 우리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서 그 지역들이 전부 <아리랑>의 무대가 되었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피흘린 모든 사람들의 공은
공정하게 평가되고 공평하게 대접되어야 한다”
흔히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반만년인 5천 년이라고 한다. 앞으로도 우리 민족의 삶은 5천 년 이상 장구하게 뻗어나갈 것이다. 한 인생을 60년으로 볼 때 1만 년의 세월은 영원이라 해도 과장일 것이 없다. 1만 년의 민족사 속에서 분단대립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또한 조국은 영원히 민족의 것이지 무슨무슨 주의자들의 소유가 아니다. 그러므로 지난날 식민지역사 속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피흘린 모든 사람들의 공은 공정하게 평가되고 공평하게 대접되어 민족통일이 성취해 낸 통일조국 앞에 겸손하게 바쳐지는 것으로 족하다. 나는 이런 결론을 앞에 두고 소설 『아리랑』을 쓰기 시작했다. 그건 감히 민족통일의 역사 위에서 식민지시대의 민족 수난과 투쟁을 직시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피흘린 모든 사람들의 공은
공정하게 평가되고 공평하게 대접되어야 한다”
흔히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반만년인 5천 년이라고 한다. 앞으로도 우리 민족의 삶은 5천 년 이상 장구하게 뻗어나갈 것이다. 한 인생을 60년으로 볼 때 1만 년의 세월은 영원이라 해도 과장일 것이 없다. 1만 년의 민족사 속에서 분단대립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또한 조국은 영원히 민족의 것이지 무슨무슨 주의자들의 소유가 아니다. 그러므로 지난날 식민지역사 속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피흘린 모든 사람들의 공은 공정하게 평가되고 공평하게 대접되어 민족통일이 성취해 낸 통일조국 앞에 겸손하게 바쳐지는 것으로 족하다. 나는 이런 결론을 앞에 두고 소설 『아리랑』을 쓰기 시작했다. 그건 감히 민족통일의 역사 위에서 식민지시대의 민족 수난과 투쟁을 직시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만이 아니다. 미래의 설계가 또한 역사다. 우리는 자칫 식민지시대를 전설적으로 멀리 느끼거나 피상적으로 방치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그러나 민족분단의 비극이 바로 식민지시대의 결과라는 사실을 명백히 깨닫는다면 그 시대의 역사를 왜 바르게 알아야 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은 나라를 빼앗기게 된 어지러운 상황이 시작되면서부터 세계 여러 나라로 떠돌아야 했다. 나는 그 자취를 일일이 찾아다녔다.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동남아 일대, 그 지역들은 자그마치 지구의 절반에 이르렀다. 우리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서 그 지역들이 전부 <아리랑>의 무대가 되었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만이 아니다. 미래의 설계가 또한 역사다. 우리는 자칫 식민지시대를 전설적으로 멀리 느끼거나 피상적으로 방치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그러나 민족분단의 비극이 바로 식민지시대의 결과라는 사실을 명백히 깨닫는다면 그 시대의 역사를 왜 바르게 알아야 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은 나라를 빼앗기게 된 어지러운 상황이 시작되면서부터 세계 여러 나라로 떠돌아야 했다. 나는 그 자취를 일일이 찾아다녔다.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동남아 일대, 그 지역들은 자그마치 지구의 절반에 이르렀다. 우리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서 그 지역들이 전부 <아리랑>의 무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