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세상 아름다운 인연
숲이 타고 있었습니다. 숲 속의 동물들은 앞을 다투며 도망을 갔습니다. 하지만 크리킨디(벌새)란 이름의 새는 왔다 갔다 하며 작은 주둥이로 물고 온 단 한 방울의 물로 불을 끄느라 분주했습니다. 다른 동물들이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저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어?”라며 비웃었습니다. 그러자 크리킨디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
안데스 산맥의 원주민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족 중 누군가가 크게 아파서 수술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수술을 앞두고 혈액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혈액이 없어 직접 혈액을 구해본 적이 있는가?
혈액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 ‘내리는 비가 피였으면…….’ 하고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 이런 적이 드물겠지만, 과거에는 수혈을 필요로 하는 환자와 가족들은 병마의 고통과 함께 이런 시름도 떠맡아야 했다. 지금은 혈액을 구하기가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한다. 모두가 크리킨디 작은 새처럼 묵묵히 생명 나눔을 실천하고 계신 헌혈자들의 덕분이다. 하나의 물방울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듯이 한 방울 한 방울의 피가 모여 생명을 살리는 희망이 된다. 아프고 두렵지만 함께 사는 세상이기에 큰 용기를 내어 많은 사람들이 생명 살리기에 동참하고 있다.
2009년, 구로 헌혈의 집의 72시간이 「다큐멘터리 3일」이라는 프로를 통해 방영된 적이 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나의 일터를 보는 기분이 무척 새로웠다. 그곳에 근무하는 동료 간호사들을 보면서 혈액원 간호사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매일 만나는 헌혈자이지만 방송을 보면서 그들의 따뜻한 나눔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처음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한 때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6년이 흘렀다. 지난 23년 동안 혈액원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만난 수많은 헌혈자들과 경험했던 소중한 일상을 글로 모았다. 그분들이 나에게 일깨워준 삶의 자세와 의미에 대해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어 한 분 한 분을 떠올리며 글을 썼다. 그래서 6년을 기다려온 글도 있는데, 이제야 빛을 보게 되어 다행이다.
아울러 이 땅에 헌혈이 뿌리내리도록 불철주야 노력하셨던 선구자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았다. 그분들의 피나는 노력이 아니었다면 느껴보지 못할 여유이다. 또한 헌혈받은 혈액이 환자에게 전해지는 과정을 통해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모습도 적었다.
매혈에서 헌혈에 이르기까지 황무지에 생명을 씨앗을 뿌리고 정성껏 가꾸어 꽃을 피웠다. 고통받는 이웃에게 전해주는 생명의 꽃은 나눔의 가치를 한층 높여 준다. 어우러진 하모니가 세상을 밝고 건강하게 이끌어준다.
부족한 마음으로 책을 준비하면서 헌혈로 맺어진 아름다운 인연인 헌혈자들, 병원 관계자들, 환자와 가족들, 직원 동료들 그리고 적십자사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밝고 건강한 세상, 모두가 당신 덕분입니다.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2015년 6월 -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