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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성운

최근작
2021년 10월 <WITH 바울>

WITH 바울

바울의 선교 여정을 다루는 책들은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바울의 선교 여정을 설명하는 책들이 역사적 배경 설명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헬라-로마 역사가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것처럼 “비록 역사는 교회 밖의 소학에서 배우는 것이기는 하지만 거룩한 책들을 이해하는데 우리를 크게 돕기” 때문이다. 헬라-로마 역사는 3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바울이 어떻게 전 지중해 세계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는지 설명해주며, 성경에 기록된 바울과 교회의 이야기가 누군가에 의해 꾸며진 전설이 아니라 구체적인 공간과 시간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그래서 이 책도 독자들을 바울이 사역했던 역사적 공간으로 인도한다. 이 책이 바울이 사역했던 공간으로 독자들을 인도하는 것은, 하이데거의 말처럼 “공간은 시간이 압축된 곳”이기 때문이다. 고대 에베소를 예로 들자면, 이 도시에는 주전 4세기부터 주후 8세기까지 1,200년 동안 있었던 일들이 압축되어 있다. 아고라, 연극장, 항구, 신전, 목욕탕, 길, 관공서에서부터 건물 벽에 그려진 낙서와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 대리석 조각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물은 압축된 시간을 풀어서 우리가 과거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타임캡슐(time capsule)이다. 우리가 에베소의 거대한 연극장에 들어서면 바울과 동역자들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소요를 떠올리고, 아고라 근처에 있는 가게들을 보면 천막을 만들고 있는 바울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고대 도시에 발을 들여놓는다고 해서 저절로 과거로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물을 타임캡슐로 삼아 바울과 초대 교회로 시간여행을 하려면 공간과 유물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간과 유물이 가지고 있는 사건과 사연들을 알아야 한다. 알지 못했을 때는 폐허가 된 집터에 지나지 않지만,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는 순간 그 집터는 의미를 갖기 시작하고, 우리를 과거로 데려가 사도들과 초대 교회의 자취와 숨결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는 아는 만큼 공간과 유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의미를 부여하는 만큼 의미를 되돌려 받게 된다. 알지 못하면 볼 수도 없고 의미를 찾을 수도 없다. 그래서 유적지를 답사할 때는 몰랐던 것들을 알게 해주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해주는 탁월한 가이드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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