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은 멋지고, 세상은 얼룩덜룩합니다만 우린 읽어야 할 책이 있고 먹어야 할 음식이 있으며 만나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고 자연을 만나면 침묵할 일이 많지요. 그렇지만 새와 나무와 풀잎들이 말을 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주고받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겁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나무, 벼슬하는 나무, 세금을 내는 나무, 수령이 오래된 나무, 근사한 나무가 많지만 제가 아는 나무들은 길가의, 낡은 집터에, 묵정밭에, 천변에,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곳에 살지만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켰고 사람이 오면 사람을 반겼고, 새가 날아들면 새를 품었고, 바람이 들이받으면 바람과 함께 넘어지며 시간과 기억을 꿰어온 생명입니다. 바로 내 이웃과 같지요. 주름이 쪼글쪼글한 할매와 기왓장에 흘러내리는 흙과 지푸라기들처럼 조용하지만 매 순간 반짝반짝 빛이 나는 신호를 보내옵니다. 사라지고 지워지는 순간 다른 생명이 찬란한 바통을 이어받게 되리라는 것을 당신도 나도 알고 있습니다. 나무는 그런 존재입니다. 나는 그 모든 나무들의 자식으로 커왔습니다. 당신은 그렇지 않은가요?
놀라워라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너는 아는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네
다만 잎사귀에 스민 애벌레의
조용한 마음이기는 했고
주름을 거느린 꽃의 진심이기도 했고
날개를 가진 생명들이 붕붕거리는 것이기도 하여
어둠 속의 흰 눈
소리가 나지 않는 꿈
그래서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묻지 않고
계속 걷기만 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