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동심을 아끼고 사랑하며
아름다운 계절 가을이다. 손자?손녀가 주말에 놀러 왔다.
하늘나라로 떠난 풍산개가 남기고 간 사료를 들고, 대문을 나섰다.
손녀랑 함께, 아파트 1층 베란다 밑에서 새끼를 키우는 고양이를 만나러 갔다.
어디로들 갔을까?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고양이 가족이 한꺼번에 달려왔다. 먹이를 구하러 나갔다가 허탕을 쳤나 보다. 새끼고양이들은 우리가 주는 사료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이윽고 새끼들이 만족해하며 허리를 쭉 펴고 뒤로 물러나자, 주변을 살피며 지켜보던 어미고양이가 살금살금 기어 와서 나머지 사료를 먹어 치웠다.
풍산개 튼실이가 잠자고 있는 동산을 한 바퀴 돌고 온 손자가, 바람에 떨어진 단풍잎을 양손 가득 주워 왔다. 유리 수반에 물을 가득 담아 색색의 낙엽들과 동그란 양초 몇 개를 띄워 불을 붙이고 분위기를 살렸다.
“아, 가을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손자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나비를 달아 줄게>는 우리 손녀딸을 주인공으로 해서 쓴 짧은 동화다.
첫 발령지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동화를 쓴 지 벌써 50년 세월이 흘렀다.
요즈음엔 아무래도 손자?손녀의 생각과 활동에 관심을 쏟는다.
튼실이한테 “열세 살이 넘으면 넌 절대로 떡국을 먹지 마라. 나이를 더 먹으면 안 되니까.” 하며, 개들의 수명을 묻고 나서 진심으로 오래오래 살아 달라고 부탁하던 손자다.
할머니 집에 오면 종종 함께 산책하던 풍산개의 모습이 사라진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허전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우리 손주들에게 이 동화책을 맨 먼저 선물하고 싶다.
종이책 구독이 날로 줄어들고, 독자들의 취향이 급변한다 해도 나는 동화 쓰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한평생 교육자와 문학가로 살아오며 꿈밭에 심은 희망과 소중한 결실들을 쉽게 버릴 수는 없다.
<나비를 달아 줄게>가 이 책에 실린 동화들을 대표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나는 거짓 없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동심을 가장 아끼고 사랑한다.
마을에 세워지는 ‘평화의 소녀상’을 어떻게, 어린 손녀에게 숨김없이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일제 시대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다.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매미에게 어린 소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손주들이 조금 더 자라면 내가 쓴 장편소설 <평양기생학교 스캔들>을 읽으며,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의 만행과 사악함,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 처하더라도 자신의 꿈을 펼치며 소신 있게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이해하리라 믿는다.
3년 전 <월간문학> <국제펜> <계간문예> 등 여러 잡지에 발표한 동화들을 한데 모아 <꽹과리 소년>을 펴낸 데 이어, 곧바로 지면에 발표한 다른 작품들을 묶어 내는 것은 추수 후에 이삭을 줍는 심정이라 표현하고 싶다.
이천십구년 가을을 맞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