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시절의 나에게 가가와 도요히코는 꿈이었고 전설이었다. 그가 쓴「나 는 왜 크리스챤이 되었는가?」라는 문고판 소책자를 외우다시피 읽어 그 책 이 허물릴 정도였다. 그의 삶과 헌신을 부러워하였고, 병든 몸으로 이웃을 사랑한 그 사역을 흠모하였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병약한 몸이었다.‘부잣집 막내아들’이라는 라벨을 달았으나 늘 외로움 속에 사는 소년이었다. 행동보다 머릿속의 꿈으로 나를 그려가는 환상속의 존재였다. 그래서 꿈도 자주 변하였다. 어릴 때는 목사가 되고 싶었다. 좀 더 자라서는 학자가 되고 싶었고, 그 후에는 시인이 되고 싶 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이세 가지 꿈이 모두 이루어졌으나 무언가 제대로 된 것이 없는 미완성의 존재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 지난날을 성 찰하면서 어릴적 가슴에 품었던 가가와 도요히코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1996년부터 일본 고베신학교 초빙교수로서 일 년에 몇 차례씩 고베에 가서 강의할 때마다 학교 1층에 있는 서점에 매일 들려 가가와 도요히코에 관한 자료들을 찾고 모으기 시작하였다. 또 도서관의 자료와 신가와(新川)에 있는
「가가와 도요히코 기념관」의 여러 자료를 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가가와에 대한 종합적 연구를 하였고, 그 결실로 본서를 선 보이게 되었다. 본서는 모두 3부로 되어 있다.
제1부는‘그의 삶’을 다루었는데 주를 달지 않고 생애사를 썼고 제2부는 ‘그의 사역’과 제3부는‘그의 사상’은 논문체로 서술하였다. 가가와 도요히 코 연구의 종합적 결산으로 방대한 양의 저서가 되었다.
이 책에 있는 글들 중에는「신학지남」을 비롯한 전문적 학술지에 게재된 것도 있고, 저자가 새롭게 발표하는 것도 있다. 독자의 양해를 구하는 것은 생애, 사역, 사상으로 나누다 보니 일부 중복되는 내용도 있으나 한 사람을 여 러 관점에서 조명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생긴 결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본서가 나오는데 여러 고마운 손길들의 도움에 감사를 드린다. 특히 일본 의 많은‘가가와 도요히코 연구가’들의 선행연구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 감사하다. 특히 한국에서는 몇 안 되는 가가와 도요히코 연구가 들이 모여「한국 가가와 도요히코 학회」조직이 논의되었으나 이 일을 주도 하는 젊은 목사가 갑자기 소천하여 더 추진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러나 이 분야 연구의 기초를 닦는다는 점에서 본서를 간행하는 것이다. 또 방대한 양
의 원고를 타이핑한 사랑하는 손길에도 감사드린다.
본서를 통해 하나님 홀로 영광받으시고, 이 땅에도 가가와 도요히코 같은 헌신자들이 나오기를 고대한다. - 머리말
머리말
시편은 하나님 백성의 감사요, 호소이며, 절규이며, 찬탄이다. 그들은 시를 통하여 속에 있는 신앙의 열정을 육화(肉化)하고 절대자의 영광을 찬양한다.
이 시편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혼의 노래로 정착하였고, 그 고백들을 통해 아름다움의 극치를 음미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가슴 속에 시편의 음률이 하나의 소망의 노래로 메아리친다.
이 「시편묵상」은 극동방송에서 「김남식의 시편묵상」이란 제목으로 매주 토요일과 주일 새벽에 2000년부터 3년 반 동안 방송한 원고를 묶은 것이다. 150편의 시편을 1년 366일 동안 묵상하도록 엮었다. 새벽기도, 가정예배, Q.T에서 활용할 수 있게 편집하였다. 방송시간 관계로 모두 일정한 분량의 원고를 집필하였다.
이 방송을 하면서 시편의 향기에 젖었고, 필자 자신이 은혜를 받았다. 또 필자 개인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2003년 2월 암 선고를 받고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때 「시편묵상」이 방송 중이였고, 마무리 단계였다.
혼자서 기도하였다. “하나님, 저를 불러 가시려면 이 방송을 끝내고 불러 가십시오.”라고 억지 기도를 하였다. 수술하기 전 주간에는 종일 녹음실에 박혀 몇 달치 녹음을 하였다. 사정을 모르는 PD는 “왜 그러느냐”고 한다. 나는 “멀리 여행을 다녀와야 한다. 사정에 여의치 않으면 못 올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나는 살아 돌아왔고 「시편묵상」의 방송을 마쳤다. 귀한 자리를 만들어준 극동방송과 담당 PD 여러분, 청취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이렇게 준비된 「시편묵상」은 한 어린 학생의 도움으로 타이핑되었다. 목포재건교회 정낙준 목사의 아들 정민주 군이 이 일을 감당하였다. 정 군은 그때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나의 원고를 받아 어린 손으로 형상화시켰다(2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정 군은 직업군인이 되어 충실히 복무하고 있다).
묻어 둔 이 원고가 하늘유통의 황성연 장로에 의해 두 권의 책으로 묶어졌으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할 것은 저자가 구약 신학자가 아니기에 ‘시편 주석’을 저술한 것이 아니라 시인의 눈으로 ‘시편 묵상’을 하며 시편을 가슴에 담고자 했다.
이 생명 다할 때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를 쓰고 싶다.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2022년 초여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