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대구의 봄
희망찬 한 해를 기약하던 연초에 우리를 기다린 건 불청객 코로나-19였다. 그건 결코 달콤한 추억이 될 수 없고, 그가 남긴 상처는 깊고도 진하다. 2020년 1월 20일 이후 우리나라에서 30명의 환자가 발생한 한 달 동안, 코로나는 먼 곳에서 발화된 큰 불에서 튀는 작은 불티를 보는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2월 18일 대구에 첫 환자가 등장하며 모두의 일상이 무너졌고, 순식간에 온 도시가 적막과 공포에 휩싸였다. 신천지 교인들을 중심으로 매일 수십에서 수백 명의 확진자가 나타났다. 2월 29일 하루에만 741명이 진단되는 등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삶의 공간으로 번져들었다. 시민들은 매일 발표되는 확진자 수를 지켜보며 불안해했다, 확진된 환자는 순서대로 병원에 입원되었으나 곧 음압병실 용량을 넘어선 발생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의료시스템도 붕괴에 직면하였다.
대구의 상황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의료계도 사태가 급격하게 나빠지자 극도로 긴장하였다. 전국의 의료인과 봉사자들이 대구로 달려왔고, 국민들도 안타까워하며 애를 태웠다. 중앙 정부와 대구시에서 코로나 병상을 확충하여 치료에 나섰고 수용하지 못한 중환자들은 광주, 전주,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병원에서 받아 주었다. 대구·경북과 인근 16곳에 생활치료센터가 설치되고, 대학은 학생기숙사를 제공하였다. 여기에 전국의 병원들도 의료진을 파견하여 동참하였고, 3000명 이상의 환자를 입소시켜 치료하였다. 의료진, 공무원, 군 장병, 관계 직원들 모두 방역복 속에서 땀을 흘렸다. 그 당시는 세상을 떠난 이웃에 마음 아파할 정신적인 여유도 없었다. 그러나 결국은 환자들을 치료하고 국민들의 공포감을 해결해주며, 지역사회를 감염으로부터 보호하는 임무를 완수했다. 시민들도 스스로를 봉쇄하며 자제하였고 그동안 참 성실하게 살았다. 모두 깜깜한 어둠 속의 진흙탕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그러자 온통 먹구름만 가득한 하늘에서도 서서히 햇살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나라에 코로나-19가 등장한 지 100일이 지났다. 그동안 전국의 10,780명 확진자 중 대구 시민이 64%(6852명)였고, 경북을 포함하면 68.5%를 차지한다. 생명을 잃은 249분 중 대부분이 대구·경북 주민이었다. 이번 코로나-19 KOREA는 그야말로 대구에서 펼쳐진 코로나와의 전투였다.
나도 3월 한 달 동안 코로나의 현장에 있었다. 코로나의 공포는 두려웠고 때로는 섬뜩했다. 그러나 우리 이웃이 아프고 어려운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는 무력감은 정말 힘들었다. 어디에서 어떤 일이 주어져도 하겠다고 자원했고, 생활치료센터로 배치되었다. 그곳에서 모두 애타는 마음으로 달려와 주신 전국의 의료진, 자원봉사자, 공무원, 군인들과 함께 열심히 일했다.
대구로 봉사왔던 많은 분들은 전장으로 향하는 비장함으로 가족들과 눈물의 이별을 했다고 했다. 우리는 대구에 살며 매일 코로나 병원으로 무감각하게 뚜벅뚜벅 출퇴근을 했을 뿐이었는데, 이 도시에 들어오면 바로 무시무시한 코로나에 감염된다고 확신하는듯했다.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사는 이방인이었기에 실없는 웃음이 났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도우러 온 사람과 여기서 살아야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은 마음가짐이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 의료인이라고 환자를 더 열심히 진료한 것은 아니겠으나, 아파하며 신음하던 가족을 더 안타까워한 것은 사실이었다. 이건 우리의 일이었고 그 누구에게 대신시키지 못할 나의 임무이라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결사적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무사히 가정으로 돌아가는 이웃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보람이 있었다. 퇴원하던 그들도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긴 사연을 담은 감사의 편지를 남겼고, 평생을 살면서 나의 뒤에는 위대한 대한민국과 국민이 버티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는 분도 있었다. 어느 주부는 자신보다 집에 남겨진 가족들을 보살펴 달라고 사정했다. 우리들 이웃의 애환을 제대로 느꼈다.
대구에서 코로나-19를 겪었더니 모두에게 감사할 일이 넘치고도 넘친다. 환자를 돌보며 도움을 준 것보다 내가 더 큰 마음의 선물을 받았고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 의료진을 격려하고 환자들의 완쾌를 바라는 애절한 마음을 보내준 위대한 우리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감동했다. 모든 걸 제쳐두고 대구로 달려와 준 전국의 의료인, 공무원, 자원봉사자, 군인들 그리고 성원해 준 국민들의 따뜻함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사회공동모금회와 적십자사, 의사회를 통해 기증된 엄청난 후원금과 의약품, 식료품과 함께 전해진 국민들의 따뜻한 편지에 눈가가 촉촉해진 경우도 많았다.
오랫동안 대구에 상주하며 현장을 지휘한 정세균 총리를 비롯한 공무원분들의 헌신에도 감사드린다. 특히 가장 열심히 일했음에도 정치적 일정과 맞물려 필요 이상의 비난을 받았던 권영진 대구시장의 진정성에도 심심한 감사와 박수를 보낸다.
학이사 신중현님이 코로나-19 대구 진료현장에서 있었던 의료인들의 기억을 우리 시대의 기록으로 남기자고 제안하였다. 아직도 코로나-19가 종식된 것은 아니지만,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으니 그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엄청난 희생을 치룬 대구의 코로나-19 기록은 공식적인 백서로 남겨지겠지만,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일선 의료의 단상들은 또다시 망각의 과정을 밟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코로나 전사로 잘 알려진 김미래, 박지원, 이은주 선생께 동참을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동의해주셨다. 이에 더하여 많은 분들이 기꺼이 경험을 공유해주셨기에 마침내 이 글집이 나오게 되었다.
대구가 코로나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았다. 이 경험이 미래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기억의 절차에서 6시간 미만의 단기기억은 신경섬유 간의 접속에 의하여 이루어지나, 그 이상의 장기적인 기억은 이를 위한 특별한 단백질의 생성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글집이 대구 의료현장을 기억하는 한 가지 단백질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 책이 고통을 받던 대구에 대한 혐오의 막말을 일삼은 모 여류소설가와 역사학자에게도 읽혀지길 바란다.
스페인 세비야를 기반으로 하는 축구팀 레알 베티스의 팬들은 “지더라도 베티스 만세 Viva er Betis manque pierda!”를 외친다. 간절한 팬심이다. 우리는 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더라도 끝까지 대구 만세! Viva er Daegu manque pierda!”다.
2020년 5월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그의 소설 제목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결정하며 쾌재를 불렀을 것 같다.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에서 종소리가 울려퍼지지는 않으나, 제목 자체만으로도 혼자 남겨진 조던의 비장하고 애달픈 메시지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정호승 시인은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시고…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라고 했다.‘종은 왜 울리는가?’라는 질문에 한 가지 정답이 있을 수는 없다. 같은 종소리에도 우리의 행동 규범을 결정해주는 알림의 목적,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아 차마 말로써 전할 자신이 없는 그 무엇을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 주위와 같이 나누고 싶은 주체할 수 없는 기쁨, 어떤 방법으로도 다 표현될 수 없는 깊은 슬픔이 각각 담겨 있기 때문이다.
종Bell은 인류가 역사를 처음 기록하던 시절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황제黃帝와 염제炎帝가 종을 처음 주조했다는 기록이 있고, 은銀, 주周나라 시대의 종은 제법 많은 종류가 남아 있다. 서양에서도 3000년 전에 만들어진 바빌론의 유물에 종에 관한 기록이 있으며, 성경 출애굽기 28장은 ‘제사장의 복장에 종을 달아…’라고 썼다. 종은 전 세계에 분포하고 있다. 세상에는 종을 둘러싼 신기한 전설도 많고, 자신들이 아끼는 종에는 자연 재해를 이기고자 하는 특별한 힘이나 역병이나 마법을 없애주는 영험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각각의 종에는 그들의 문명과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종교나 문화적인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는 것이다. 고대 사람들은 신들과 소통하거나 영혼이 된 조상이나 초자연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종을 울렸고, 점차 동물과 인간과의 소통, 인간과 인간과의 소통을 위하여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통일신라시대의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에는 “지극한 진리는 형상 밖의 모든 것을 포함하니 그것을 보려 하여도 그 근원을 보기 어렵고, 진리의 소리는 천지에 진동하니 들으려 해도 듣기 어렵다. 이에 신종神鍾을 달아 진리의 소리를 깨닫게 한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제는 기계 소리, 녹음한 디지털 음향에 그 자리를 내어 주고 있는 종소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평화롭게 소통하던 옛날에 대한 추억을 가슴 깊이 지니고 있다.
추억 속의 종소리를 기억하며, 아름다운 모습의 종을 수집한 지 사반세기가 지났다. 아직 멋진 수집가의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했으나, 뒤를 돌아보니 꽤나 오랜 시간동안 종을 수집하며 혼자 즐거워했던 것 같다.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Outlier’에서 많은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추적한 결과 만 시간 이상을 투자하면 어느 분야에서든지 수준급에 도달한다고 하였다. 그의 기준으로 평가해볼 때, 나의 종에 대한 짝사랑도 이젠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
그동안 종을 수집하며, 때로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종도 많이 보았다. 사기꾼들이 만든 가짜 종을 비싸게 구입한 뒤, 씁쓸한 마음을 홀로 달래야만 했던 순간도 있었다. 16세기에 스페인 성당의 복사소년altar boy이 흔들었다는 푸른 녹이 슨 금속 종을 구한 적이 있었다. 카리브 해에 침몰한 중세시대의 난파선에서 건졌다는 종이라고 했다. 소중한 인류의 유산이라 생각하고 몇 년간 애지중지하였는데, 어느 순간 이 종들이 30여 년 전 멕시코에서 다량으로 만들어 유포하였던 저가의 청동 종임을 알게 되어 망연자실하였다. 자연스럽게 종에 대하여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고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미국 종 수집가들의 모임American Bell Association, ABA을 알게 되었다. 열성적인 종 애호가들에 의하여 결성된 ABA는 종에 관한 공부를 하고, 1940년부터 종에 관련된 다양한 사연들을 찾아‘벨타워Bell Tower’란 잡지를 만들고 있었다. 어느 날 고인이 된 어머니의 수집 자료를 판매하던 분에게서 지금까지 발행된 벨타워 잡지 전체와 관련 책들을 일괄 구입하였다. 고등학교 화학교사, 병원 간호사, 주말이면 교회에서 성가대로 활동하는 것이 가장 기쁘다는 평범한 가정주부, 의학잡지에서 이름을 본 적이 있는 메이요 병원의 종양내과 교수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만든 간행물이었다. 그들이 종을 좋아하게 된 시시콜콜한 내력부터, 종과 관련된 문화인류학적 지식과 그 시대의 예술사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되어있었다. 공예나 미술사 전공자들이 아닌 아마추어들이 이런 수준의 책을 정기적으로 발간해 왔다는 사실에 신선한 감동을 받았다. 즉시 ABA에 가입하였다.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들인 회원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서로 교류하며 마치 그들의 해박한 지식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종을 설명하고 있었다. 또 자신들의 궁금증을 서로 해결해 주고 있었다. 한때 주한 미군으로 근무한 적도 있다는 앨런 영감님은 미국 경매 사이트에 올라온 세계의 종들을 찾아내서 그 종들에 관한 상세한 설명과 예상 가격, 그리고 거기에 연관된 종교, 문화, 문학, 예술학적 배경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올려주었다. 캐나다의 전직 교사인 롭과 샐리 로이Roy 부부에게서는 종뿐만 아니라 다 방면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들과는 아직 한 번도 만나보지는 못했으나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ABA에 참여한 것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특별한 분야에 대한 책을 발간하거나 취미를 전문가 수준으로 승화시킨 블로그 운영자들을 본적이 있으나, 이곳은 회원들의 집단지성으로 전문가 수준의 백과사전을 만들고 있었다. 이들도 처음에는 취미로, 그리고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이런 활동을 시작하였을 것이나, 서로 도와가며 만든 그들의 잡지나 회원들의 공간에 수록된 기록들은 실로 깊고 방대하였다. 세상에 종에 미친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도 경이로웠지만 그 할아버지 할머니 회원들이 종에 대한 역사와 지식을 기록한 전문서적들의 깊이와 이를 만든 그들의 열정에 정말 감동했다. 나도 사소한 것 하나라도 제대로 이해한 후, 그 바탕 위에서 체계적인 수집을 해 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훗날 나의 수집품에 대하여 궁금하게 생각할 사람들의 호기심과 의문점에 미리 답변해줄 준비를 할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의무감도 생겼다.
내가 만난 종에 관한 설명과 그 종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을 찾아서 글로 정리하였고 나의 개인 SNS에도 남겼다. 주로 종소리에 담긴 내력을 문화 인류학적, 세계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내용이었다. 2014년 이성주 대표의 권유로 세계의 종들에 얽힌 역사적인 사건과 배경에 관한 글을 의료 사이트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기 시작했다. 넓고 깊지 않은 지식에 관한 책이 유행을 해서 일까? 나의 중구난방식 글에 따뜻하게 호응을 해 주신 분들이 있었고, 연재 횟수가 많아지자 사이버 공간에 남겨진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발간해 보라는 권유를 해주셨다. 순전히 나의 눈높이에서, 그리고 세상의 삶에 관심을 가진 한 사람의 지적 호기심으로 시작하였던 완숙되지 못한 글이었으나, 용기를 내어 《종소리, 세상을 바꾸다》란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마침내는 속편을 발간하게 되었다.
“지즉위진애知則爲眞愛 애즉위진간愛則爲眞看 간즉축지이비도축야看則畜之而非徒畜也”.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감상하게 되며, 감상하다 보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그냥 쌓아두는 것은 아니다).
정조 때의 문장가 유한준兪漢雋의 글이다. 유홍준 교수는 그의 책에서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며愛則爲眞看를 알면 참으로 감상하게 된다.知則爲眞看’로 바꾸어 썼다. 아는 만큼 볼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수집蒐集’은 사라져 가는 물건에 다시 혼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라 하였다. 몸을 떠나가는 혼을 다시 잡아넣어 주는 것은 귀신이 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라지는 혼을 다시 불어준다는 수집과 그리고 그들의 출생에 관한 비밀을 찾는 일은 기쁜 마음으로 도전해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만난 종을 만들었던 장인들이 쏟아 부었던 열정을 나의 글로 세상에 알릴 수 있다는 것도 큰 보람이라 생각되었다.
자기의 관심 대상을 순수한 호기심으로 깊이 파고드는 열정적인 사람을 마니아mania라 한다. 이들은 수집가적 기질이 강한 사람일 것이다. 일본어로‘당신’의 존칭인 ‘댁宅’을 뜻하는 오타쿠御宅는 “이상한 것에 몰두하거나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다. 오타쿠의 의미에는 마니아를 넘어 자기가 좋아하는 곳에 집중하여 자신들만의 문화를 창조할 정도로 몰입하는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 오타쿠는 다른 사람의 시선은 아예 무시하고, 혼자만의 기준으로 자신만의 세상에 깊게 몰두하여 돈과 시간, 정열을 낭비한다고 생각한다. 과도하고 부정적인 시각이 담긴 용어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마니아와 오타쿠의 삶을 존경한다. 그들은 즐겁게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2017년 봄을 기다리며 -
나와 비슷한 시기를 살아온 간호사분이 자신의 60년 삶을 부은 책을 내면서 ‘쉽게 쓴 글은 있어도 쉽게 산 인생은 없다’라고 했다. 나도 용기를 내어 우리 세대들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나의 힘이 되어준 사랑하는 가족과 까다롭기만 한 나를 키워주고 믿어 준 스승님과 동료, 언제나 따뜻했던 친구와 이웃들에게 드리는 감사의 몸짓이기도 하다.
두서없는 기억의 편린을 모아 멋진 한 장으로 다시 펼칠만한 능력은 없다. 우리 민족의 멋을 가장 잘 표현한 것 중 하나가 헤지고 흩어진 천 조각들을 다시 모아 만든 전통 조각보라 했다. 쓸모없는 작은 조각을 모아 새 쓰임새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신 선배 박윤규 교수님의 조각보 그림을 표지로 모셔서 나의 부족함과 책의 엉성함을 가려 보려 노력했다. - 머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