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부족한 사람이 쓴 『꼬리 시리즈』의 독자가 되어 주신 분께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제가 여러분하고 친해진(!) 것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感(감)이 여러분에게 전달되어져서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지금까지 영어책을 저술해 온 사람들 중에 이 사람이 유달리(!!) 여러분하고 수준이 비슷한 사람이란 감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일테면 같이 영어 콤플렉스에 걸린 동병상련(同病相憐)이나 영어를 잘하고는 싶은 사람끼리의 유유상종(類類相從)이 아니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漢字> 첫머리에도 썼듯이 <꼬꼬영>을 비롯한 <꼬리 시리즈>들은 그냥 '한호림의 호기심의 결과'로 태어났습니다. 캐나다에 온 이듬해인 88년부터 <꼬꼬영>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영어의 난전(亂戰) 속에 감히 나도 한몫 끼어 보자고 달려들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애초부터 영어책 저술(?)을 한다고 생각조차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제 영어 실력으로 무슨 영어책을 쓴단 말입니까?
그리고 약 5년 뒤인 1993년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라는 제목으로 정말 책이 나오게 되자 출판사인 디자인하우스에 손실이나 끼칠 것이 제일 걱정이 됐지요. 팔리리라고는 전혀 기대도 못했기에 말입니다. 베스트셀러니 스테디셀러 같은 사치성 고급 단어는 그야말로 언감생심이었고. 그런데 저의 그런 순진하고 착한(?) 마음이 여러분들하고 통해서 이렇게 '눈으로 본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의 현실. 별것에 다 선두 주자 노릇을 하는 일본을 비롯한 타이완 기타 몇몇 아시아 나라들과 함께 우리나라는 영어 공부로 사람을 진이 빠지게 합니다. 이런 생각이 나는군요. 열국지(列國誌)에 나오는 위(魏)나라 문제(problem? No, 文帝!) 조비가 애꿎은 동생 조식을 죽일 이유를 만드느라고 일곱 발짝을 걷는 사이에 시를 짓지 못하면 죽인다고 했을 때 조식이 울면서 지은 시 칠보지시(七步之詩)의 내용말입니다. 즉 한 뿌리에서 나온 콩깍지가 콩을 삶듯이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 겁니다.
저는 영어 공부를 등산에 비겨봅니다. 한국의 그 많은 등산하는 사람들이 山行을 한다고 해도 누구나 다 에베레스트 같은 높은 산을 목표로 할 필요가 없지요. 높이만으로는 전혀 명산이 못 되는 도봉산 정도의 山行에서도 시야가 넓어지고 충분히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며 즐길 수 있듯이 영어도 영어의 도봉산 정도에서 즐기면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러다 재미를 붙여 설악산 대청봉 정도를 오르면 더욱 좋구요. 말할 것도 없이 이렇게 저 좋아서 할 사람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영어를 쓰는 나라의 서점엘 들어가 보면 반드시, 그것도 현관 가까운 곳에 훌륭한 영어를 구사하는 법에 대한 책들로 으레 한 코너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새로 나온 영어 사전이 잘 팔리고 있지요. 그리고 학생, 성인 할 것 없이 모두 모국어인데도 영어 공부에 열심입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말을 열심히 그리고 정규 학교 공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제 개인적인 관찰입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모국어에 무관심하고 무식한 국민도 드뭅니다. 영어는 틀리면 창피스럽고 우리말은 틀려도 그만이니 말입니다. 우리는 훌륭한 우리말을 구사하고 좋은 한국어 문장을 쓰도록 계속 갈고 닦아야 합니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제안까지 나오는 세계화(영어민국화?) 시대에 '역으로 튀는 말'을 해서 애국자인 체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태어난 땅의 말, 모국어로 학문을 닦고 사고(思考)의 체계를 튼튼히 세우고 깊고 넓은 지식을 쌓는 일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2000년 5월 30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코멘트)
먼저, 이 부족한 사람이 쓴 『꼬리 시리즈』의 독자가 되어 주신 분께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제가 여러분하고 친해진(!) 것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感(감)이 여러분에게 전달되어져서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지금까지 영어책을 저술해 온 사람들 중에 이 사람이 유달리(!!) 여러분하고 수준이 비슷한 사람이란 감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일테면 같이 영어 콤플렉스에 걸린 동병상련(同病相憐)이나 영어를 잘하고는 싶은 사람끼리의 유유상종(類類相從)이 아니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漢字> 첫머리에도 썼듯이 <꼬꼬영>을 비롯한 <꼬리 시리즈>들은 그냥 '한호림의 호기심의 결과'로 태어났습니다. 캐나다에 온 이듬해인 88년부터 <꼬꼬영>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영어의 난전(亂戰) 속에 감히 나도 한몫 끼어 보자고 달려들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애초부터 영어책 저술(?)을 한다고 생각조차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제 영어 실력으로 무슨 영어책을 쓴단 말입니까?
그리고 약 5년 뒤인 1993년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라는 제목으로 정말 책이 나오게 되자 출판사인 디자인하우스에 손실이나 끼칠 것이 제일 걱정이 됐지요. 팔리리라고는 전혀 기대도 못했기에 말입니다. 베스트셀러니 스테디셀러 같은 사치성 고급 단어는 그야말로 언감생심이었고. 그런데 저의 그런 순진하고 착한(?) 마음이 여러분들하고 통해서 이렇게 '눈으로 본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의 현실. 별것에 다 선두 주자 노릇을 하는 일본을 비롯한 타이완 기타 몇몇 아시아 나라들과 함께 우리나라는 영어 공부로 사람을 진이 빠지게 합니다. 이런 생각이 나는군요. 열국지(列國誌)에 나오는 위(魏)나라 문제(problem? No, 文帝!) 조비가 애꿎은 동생 조식을 죽일 이유를 만드느라고 일곱 발짝을 걷는 사이에 시를 짓지 못하면 죽인다고 했을 때 조식이 울면서 지은 시 칠보지시(七步之詩)의 내용말입니다. 즉 한 뿌리에서 나온 콩깍지가 콩을 삶듯이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 겁니다.
저는 영어 공부를 등산에 비겨봅니다. 한국의 그 많은 등산하는 사람들이 山行을 한다고 해도 누구나 다 에베레스트 같은 높은 산을 목표로 할 필요가 없지요. 높이만으로는 전혀 명산이 못 되는 도봉산 정도의 山行에서도 시야가 넓어지고 충분히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며 즐길 수 있듯이 영어도 영어의 도봉산 정도에서 즐기면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러다 재미를 붙여 설악산 대청봉 정도를 오르면 더욱 좋구요. 말할 것도 없이 이렇게 저 좋아서 할 사람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영어를 쓰는 나라의 서점엘 들어가 보면 반드시, 그것도 현관 가까운 곳에 훌륭한 영어를 구사하는 법에 대한 책들로 으레 한 코너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새로 나온 영어 사전이 잘 팔리고 있지요. 그리고 학생, 성인 할 것 없이 모두 모국어인데도 영어 공부에 열심입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말을 열심히 그리고 정규 학교 공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제 개인적인 관찰입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모국어에 무관심하고 무식한 국민도 드뭅니다. 영어는 틀리면 창피스럽고 우리말은 틀려도 그만이니 말입니다. 우리는 훌륭한 우리말을 구사하고 좋은 한국어 문장을 쓰도록 계속 갈고 닦아야 합니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제안까지 나오는 세계화(영어민국화?) 시대에 '역으로 튀는 말'을 해서 애국자인 체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태어난 땅의 말, 모국어로 학문을 닦고 사고(思考)의 체계를 튼튼히 세우고 깊고 넓은 지식을 쌓는 일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2000년 5월 30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