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中庸)의 '중'은 편벽되거나 과불급이 없는 것을 말하고, '용'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 평상한 것을 말한다. 물질문명이 발전하면서 정신문화는 오히려 피폐해져가는 현대사회에서 중용은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학문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으로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생존하기 위한 덕목이 '중용'이고, 인간사회에서 펼쳐지는 이념갈등과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화롭게 조율해 나가기 위한 원리도 '중용'이다.
사실 철학사상적으로 보나, 그 연원에 있어 '주역'과 '도덕경'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어찌 보면 '주역'을 제대로 알려면 '도덕경'을 알아야 하고, '도덕경'을 제대로 알려면 '주역'을 알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태극(太極)이 음양(陰陽)이라는 두 기운을 낳은 원리로 본다면, '주역'은 양(陽)의 학문이고, '도덕경'은 음(陰)의 학문으로 볼 수도 있다. '주역'의 근본은 태극(太極)에 있고 '도덕경'의 근본은 도(道)에 있으며, '주역'의 핵심은 신(神) 이고 '도덕경'의 핵심은 무(無)이다.
序 文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밑에서 공부를 하다가 주역을 배우기 위하여 대둔산으로 야산선생님을 찾아갔다. 그런데 주역 책이 없어서 다른 사람이 공부하는 책을 잠깐 빌려서 선생님 앞에 놓고 배웠다. 배운 후 배운 곳을 베껴서 읽기도 하였고 책 한 권을 놓고 여럿이 같이 배우고 읽기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서책이 귀했으며 주역은 더욱 귀했다. 그리고 책을 메어 주역을 베낄만한 종이도 없었으며 베껴 읽는다 하더라도 분명치 못한 글씨와 誤字가 많았다.
이토록 구차하게 공부를 하다보니 아무래도 책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선생님께 책을 구해 오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山門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집에도 주역은 없었으며 그 고을 어느 선비의 집에도 역시 주역은 없었다. 공부를 옳게 하기 위해서는 책이 있어야 할 것 같아 할아버지께 졸라댔더니 할아버지께서는 전에 글방 선생으로 계시던 연산 땅 학부형이자 친구인 李氏 宅으로 편지를 써주시며 찾아가 보라고 하셨다. 찾아가 보니 큰집에 으리으리한 대문을 갖춘 부유한 집으로 번족한 가문이었으며 이씨 또한 유명한 학자였다. 그 분이 "주역은 아무나 못 배우는 글인데 어떻게 할려구?" 하며 가져가라고 내놓는데 큰 책으로 십여권이나 되어 짊어지니 한 짐이나 되었다.
생전 못 보던 주역 책을 짊어지고 집에 오니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내 친구인 李老人이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여 큰 맘 먹고 빌려주는 것이니 깨끗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 많은 책을 대둔산에 지고 갈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잘못 하면 훼손할 우려도 있으니 내가 아는 만큼은 가르쳐 줄 테니 나한테서 배우면서 본문만을 정서해서 다시 야산 선생께 가서 깊이 알도록 하라." 하셨다.
할아버지 말씀대로 하면서 주역 원문을 정서 하다보니 붓글씨는 많이 늘었지만 정리가 되질 않아 외우고 나서도 틀리게 읽는 데가 많았다. 주역은 다른 책과는 달리 卦爻의 변화로 인하여 서로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외워야 한다. 그런데 큰 책을 들고 다닐 수도 없고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꺼내보기 좋게 잔글씨로 옮겨 쓰기도 어렵고 설혹 잘게 쓴다 해도 틀린 곳이 많아 제대로 주역을 공부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또한 지금도 주역을 근간으로 하는 서적들은 많지만, 난해한 한문이어서 읽고자 하는 대중으로의 저변확대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주역의 글은 간결할 뿐만 아니라 이치가 심오해서 萬學의 근원이 되어왔으며 정신문명을 이어가는 등불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 빛을 접할 수 있기를 바래왔다.이러한 필요에 의해 그 동안 十五年간 주역을 강의한 것을 토대로 하여 수차례 교정을 본 「周易正文」을 간행하게 되었다. 원문에 懸吐하고 원문 밑에 한글 독음을 달았으며, 알기 쉽도록 해석한 우리말을 그 밑에 적어 원문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이 『周易正文』이야 말로 얼마나 좋은가! 간편하여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차안에서든 어느 곳에서든 펴들고 공부하기 좋고 외우기 좋으며 외우다 막히면 꺼내보기 좋고 활자도 선명하여 펴들면 한 눈에 들어오니 좋다. 이렇게 수차례 공을 들여 간편하면서도 보기 좋은 한 권의 『周易正文』을 주역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권할 만 하지 않나 싶다.
辛巳年 立春節 大山 金碩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