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주처럼 마음에 만들어진 글밭
제주도의 중산간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답니다. 전에는 유채, 콩, 당근, 감자, 귤 등 여러 종류의 농사를 지었지만, 지금은 무와 밀감 과수원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글도 쓰지요.
작가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서 책을 많이 읽었거나 공상하는 것을 좋아하거나 작가가 꿈이었다고 하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 달라요.
나는 얼굴에 흠을 갖고 태어났답니다. 거기다 못하는 것도 참 많았지요. 운동도 못했고, 노래도 못 부르고, 머리 모양도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촌스러운 단발머리만 하고 다녔어요. 예쁜 아이들이 부러울 때, 운동 잘하는 아이가 부러울 때, 노래 잘하는 아이가 부러울 때, 세련된 아이가 부러울 때마다 책을 가까이했어요. 교과서도 보고 동화책도 보면서 나의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했어요. 그러한 노력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여러분, 삼각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강물에 떠내려온 흙이나 모래 따위가 강어귀에 삼각형 모양으로 쌓여 이루어진 평지를 말하지요. 이때 모래나 흙이 강물에 떠내려오면서 자기는 논이나 밭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이런 작은 알갱이들이 아주 오랫동안 쉬지 않고 흐르다 보니 어느 지점에서는 쌓이게 되고 그 쌓인 것이 곡식을 자라게 하는 땅이 된 것이지요.
나 역시도 그래요. 처음부터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조금씩이나마 책을 읽다 보니 삼각주처럼 마음에 글밭이 만들어졌고, 그 글밭에서 네 번째 동화책을 수확하게 되었답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 중에 혹시 약점이 있어 고민하는 어린이가 있다면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세요. 꾸준하게 하다 보면 생각지 않았던 좋은 결과가 오는 수도 있으니까요. 마치 부레 없는 상어가 물에 가라앉지 않으려고 쉬지 않고 움직인 결과 바다의 강자가 된 것처럼 말이에요.
이 책 안에는 여덟 편의 글이 들어있어요. 선한 마음을 갖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바쁜 시간 내어 삽화를 그려 준 조카 다영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해요.
오해보다는 이해하며 지내길 바라며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어떨까요? 얼핏 생각하면 좋을 것 같지만 마냥 좋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생각해 보세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누군가 다 들여다보고 있다면 엄청 신경이 쓰이겠지요.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생각을 할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신은 사람에게 그런 능력을 주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남의 생각을 알아내는 능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주관에 맞춰 해석해 버리는 수가 있지요. 섣부른 판단으로 말이에요. 그래서 오해의 씨앗을 낳기도 한답니다.
오해라는 씨앗은 독을 품고 있어서 독이 들어간 열매들이 열리겠지요. 미움, 원망, 싸움과 같은 것들 말이에요. 잘 알아보지도 않고 오해를 한다면 안 되겠지요. 이 글에 나오는 동준이와 승호처럼요.
둘은 서로 친구가 되고 싶어 하면서도 오해 때문에 실타래처럼 꼬이고 꼬여 나쁜 형들과 어울리는 지경까지 가게 되지요.
여러분도 동준이와 승호처럼 오해를 하거나, 오해를 받아본 적이 있나요? 오해는 하는 친구나 받는 친구나 모두 힘들지요.
하지만 오해하는 동안은 오해인 줄 모르지요. 마음속에서만 ‘두고 봐.’라고 벼르면서 말이에요.
친구와 사이가 틀어졌다 싶으면 무슨 이유로 그러는지 상대방의 생각을 정확히 알아보는 것이 좋아요.
여러분은 여기 나오는 아이들보다 훨씬 현명하게 대처하리라 믿어요.
이 글은 머리로는 오해를 떠올리며 쓰기 시작했지만, 가슴으로는 우리 어린이들이 좋은 친구를 사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답니다.
동준이나 승호에게도 친한 친구가 있었다면 훨씬 더 빨리 오해가 풀렸을 거예요.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친구가 없다 보니 일이 점점 커지고 꼬이게 된 거지요. 친구는 어린이나 어른한테나 모두 소중한 존재랍니다.
여러분은 오해하기보다는 친구들과 서로 위하며 즐겁게 지내기를 응원할게요.
제주 해녀
제주와 해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단어로 굳어진 말입니다.
2016년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수많은 자료조사와 현지답사를 통해서 결정된 것이니 선정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제주도의 해안가 마을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도 제주도에 살고 있지만, 직업으로서의 해녀 외에 해녀문화까지 속속들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할머니의 테왁」이라는 글을 쓰기 위해서 자료 조사하러 구좌읍 하도리에 있는 해녀박물관에 간 적이 있습니다.
전시되어있는 사진과 글을 꼼꼼하게 읽어보는 중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글이 있었습니다. 해녀항일투쟁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가슴이 떨렸습니다. 멀지도 않은 곳에 살면서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미안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의 자랑스러운 해녀문화와 일본의 만행을 알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각종 관제조합을 통해서 일본의 수탈정책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들 관제조합 가운데서도 해녀조합의 수탈이 더 심했습니다.
해녀들을 보호하겠다면서 설립한 해녀조합은 1920년대 들어서 제주도의 행정 책임자인 제주도사가 해녀조합장을 겸직하게 되면서 수탈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해녀조합에서는 일본인 상인 한 사람에게만 독점권을 주어서 자유 판매를 못 하게 하고 턱없이 내린 값을 지정가격으로 정했습니다. 더군다나 지정 상인의 저울 속여먹기, 불법적 매수 행위를 보호해 주기까지 했습니다.
이 글은 일제강점기인 1931년 겨울부터 1932년 여름까지 1년 반 동안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과 있었을 것 같은 이야기들로 되어 있습니다.
등장인물 중에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세 명의 대표 해녀는 실존 인물입니다. 어찌 제주해녀항일운동 주역이 이들 셋뿐이겠습니까? 이 외에도 고차동, 김계석 해녀를 비롯한 수많은 제주해녀들의 굳센 의지와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는 단결된 힘이 있었습니다.
제주해녀의 훌륭한 점을 알려야겠다는 섣부른 생각만으로 이 글을 쓰려고 욕심을 부렸다가 여러 번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미흡하나마 완성하게 된 것은 해녀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섰던 김순이 선생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집에 불러 강의도 해주고 자료도 챙겨 주고 선생님이 알고 계신 지식도 아낌없이 나눠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잘못된 내용은 없는지 살펴봐 주신 장혜련 선생님과 까다로운 제주어 표기를 꼼꼼하게 살펴보아 주신 김창집 소설가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농사에 바쁜 중에도 글 쓰는 나를 배려해주고, 밤늦게까지 컴퓨터 앞에서 끙끙 앓는 저를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신 남편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끝으로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제주해녀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