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위의 뜻이든 자조의 뜻이든 나의 직업을 가리키는 가장 적절한 말은 '패관(稗官)'이 맞다. 시정잡배들의 시시껄렁한 짓거리에 눈을 빛내고, 가담항설과 도청도설, 괴담이설과 음풍놀월에 귀를 세우는 직업인이 나라는 사람이다. 그러한 천성으로 기껏 재주를 부려 쓴 같잖은 글을 기어이 버리지 못하고 다시 묶노라니 한편으로는 내 글에게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그래도 그 속에 무언가 생의 기미, 시대의 진실이 있을 게 아니냐?'는 배짱도 인다.
제 글쓰기는, 한밤중에 일어나 달빛 아래서 밭을 가시던 할아버지의 그 시퍼런 성실함을 배우려는, 그런 마음에서 비롯하였습니다. 할아버지가 갈아엎은 밭의 이랑 이랑마다 저는 한줌의 눈물과 한줌의 분노를 심겠습니다. 할아버지가 감자와 고구마를 캐시던 그 밭에서 저는 사랑과 인간을 거두어들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사람들을 위하여 마련한 '문학이라는 노동'의 올바른 꼴을 쳐들어 보이겠습니다. 문학다운 문학, 나아진 문학을 일구어내겠습니다.
이 책에 실린 해병대 출신 소설가들은 바로 문학이라는 매혹적인 미지의 땅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하여, 그 땅에 닿자마자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오로지 문학에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해병정신의 구현자들이다. 그러한 뜻을 해병 전우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 소설선집을 묶게 되었다고 한다면, 유별난 집합에 걸맞은 의미가 되리라 믿는다.
나에게 있어 사랑과 인생이란, 스스로 생명처럼 아낀다고 여기는 문학만큼이나 궁구하고 또 궁구하는 탐구의 대상으로 아직 그 탐구는 진행 중이다. ... 길든 짧든 한 생애를 마무리하는 때라든가, 또 내 소설을 그 누구에게나 자신만만하게 권할 수 있는 날이 와 사랑과 인생에 대한 탐구의 결론을 고배하는 자리가 마련된다면, 나는 무용의 신으로 불리는 바슬라프 니진스키와 같이 순진한 광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