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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번역

이름:김난주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58년, 대한민국 부산

직업:번역가

가족:같은 일본 문학 번역가인 양억관과 부부사이이다.

기타: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한 후, 쇼와 여자 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최근작
2024년 11월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12

70세 사망법안, 가결

이 법안이 통과된 이면에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갖가지 사회적 부작용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낳는다. 생산 인구의 저하로 국가 자체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요, 고령 인구에 대한 의료와 복지로 막대한 비용이 지출된다. 이는 젊은이들이 떠안아야 하는 부채다. 그런데 저출산으로 인해 생산 인구는 충당되지 않는다. …… 도요코의 가출은 며느리이며 아내이자 엄마인 역할로서의 자신에서, 오롯이 그녀라는 존재로 돌아감을 뜻한다. 그리고 도요코의 가출을 계기로 이 가정은 온갖 해결책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마치 시행을 앞둔 ‘70세 사망법안’이 온 국민으로 하여금 지금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며, 거기에서 벗어날 획기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또 실천하게 한 것처럼. 이 가정이 보여 준 속살에서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 이미 그런 상황일 수도 있고, 머지않아 맞닥뜨릴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이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고양이를 버리다

“옛일을 잊고 싶은 거겠지. 잠재적으로 그런 거겠지.”_ 《중국행 슬로보트》에서 잊고 싶은 옛일이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끝끝내 붙들고 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평생의 짐으로, 무거운 어깨와 함께. 작가 자신은 한 번은 문장으로 정리하고 싶었던 ‘아버지에 대한 무거운 이야기’가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를 버리러 갔던 얘기부터 쓰기 시작했더니 의외로 술술 나왔다고 하지만, 도입부의 쉼표로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일말의 머뭇거림이 느껴진다. 그리고 ‘아무튼’이라는 접속사가 몇 번이나 등장하는 점에서도. ‘전쟁’이 한 인간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서도 소설적으로 다루어졌지만, 《고양이를 버리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개인의 영역에서 다뤄진다. 그리고 나아가 인류의 모진 역사에 새겨진 무수한 ‘조각’의 기록으로.

까사 디 지노

우리가 잘 아는 이탈리아는 아니지만 그래서 더더욱 이탈리아의 속살이 때로는 아프게, 때로는 정답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그려지는 이 글들을 작업하면서 나는 다음에 이탈리아를 여행하게 된다면 콜로세움도 두오모도 곤돌라도 뒤로하고, 일명 ‘코트다쥐르’로 불리는 지중해의 해변에 서서 프랑스 쪽의 화사함과 이탈리아 쪽의 허허로움을 동시에 보고 싶어졌다. 포 강의 짙은 안개에 묻히고, 사기꾼 같은 나폴리의 택시 운전사 젠나로에게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시고, 시칠리아의 광활한 선인장 밭에서 그 탱글탱글하고 투명한 선인장 열매의 싱그러움을 맛보면서 젊은 시절의 꿈을 펼치고 있을 에토레를 만나고 싶어졌다. 남부로 내려가는 열차 속에서 그 와글와글 ‘지독하다’는 남부 사투리의 울림도 귀로 느끼고 싶다. 물론 다음에 이탈리아를 여행하게 된다면…….

나라는 수수께끼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마주하게 되는 나는 나인가? 그 대상화된 나의 분신은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아침마다 나의 어제를 반성케 하고, 오늘을 살게 하는 질문에 부딪힌다.

날기 위한 백 걸음

“인생을 즐기는 건 앞이 보이는 사람의 특권이지, 보이지 않는 사람은 암흑세계에서 외롭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지.” - 본문 중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한 소년 루치오의 이야기다. 두 돌이 지난 즈음 시신경 변성질환을 앓기 시작해, 다섯 살에 시력을 완전히 잃고 어둠에 갇힌 루치오. 그가 중학교를 막 졸업한 지금, 고모 베아트리체와 함께 알프스의 동쪽 자락에 있는 돌로미테 협곡의 한 산장을 찾았다. 산장의 이름은 ‘백 걸음’. 그리고 그와 고모를 잇는 것은 손목에 묶인 실크 스카프. 잃어버린 시각 대신 온 몸의 감각을 일깨워 자연과 교감하고 사람과 교류하면서 밝고도 당차게 성장해 가는 루치오가 마침내 악몽에서 벗어나 독수리 세피로와 함께 하늘을 훨훨 나는 마지막 장면까지의 순간순간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는 동시에, 감각의 장애가 인생의 장애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작은 진실 하나를 돌아보게 한다. 시련 속에서도 봄은 오지요. 2021년 김난주

다시, 만나다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를 ‘감동의 눈물’로 기억하는 나는 이 다시 만남이 더없이 반가웠다. 그리고 놓인 상황에 따라 극적으로 변모했지만 그 중심은 늘 한결 같았던 『다시, 만나다』의 편집자처럼,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사람과 일상과 사회를 향한 작가의 예리하면서도 따스한 눈길과 품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당신의 진짜 인생은

당신의 진짜 인생은? 이 무거운 질문 앞에, 뭐라 대답하면 좋을까요.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큰 흐름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일까요.『당신의 진짜 인생은』에서, 이 질문 앞에 선 세 사람의 답은 어땠을지, ‘글쓰기’로 얽힌 세 사람은 어떤 삶의 여정을 걷게 되는지…….

등 뒤의 기억

쉰네 살 히나코의 내면에는 현실과는 다른 또 하나의 시간이 흐른다. 아니, ‘가공의 여동생’과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진 그 다른 시간의 흐름에 밀려 현실은 저만치 뒤로 밀려나 있다. 그녀의 현실은 ‘어느 시점’ 이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아버지 다른 두 아들과 불쑥불쑥 찾아오는 옆집 아저씨, 노령자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의 삶은 그녀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그녀의 현재를 구성한다.

부드러운 양상추

맛난 먹거리에 대한 추억은 언제나 우리네 희로애락과 함께한다. 하루의 마지막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은 우리를 기쁘게 하고, 김빠진 맥주는 우리를 분노케 한다. 사랑에 빠진 이들이 마시는 술은 무엇이든 달짝지근하고, 사랑을 뒤로한 이가 마시는 술은 아프고 쓰디쓰다. 좋은 음악이 삶의 애환과 더불어 생의 기쁨을 환기하고 애증의 눈물을 쥐어짜는 것처럼. 먹거리가 우리의 원초적인 감각을 이렇게 건드리는 까닭은 그것이 곧 생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치열하게 감각을 벼리지 않을 수 없다.

사각형의 역사

비 내리는 어느 날, 무심히 생각에 잠겼다가 반짝 떠오른 의문이 꼬리를 물고 물어, 거대한 명제를 품게 되곤 한다. 그 끝에 이른 인식과 깨달음을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면 이런 책이 탄생하지 않을까.

새벽의 모든

작게나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소박하게나마 마음을 나눌 사람을 찾아가는 이 두 사람의 여정이 사랑스럽고 따스한 것은, 그들이 스스로의 상황을 깨닫고 인정하고 긍정해 가는 과정과 두루 겹치기 때문일 것이다. 생리전증후군 여자와 공황장애 남자의 만남. 느릿느릿 답답하지만 우당탕탕 요란할 때도 있고, 때로는 불똥도 튄다. 그리고 재밌다. 따스하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먹구름 걷히고 환한 빛을 품은 새벽이 그들에게도 반드시 찾아오리란 것을 믿을 수 있다.

신기한 돈

돈이 주는 명예와 권위를 위해 피땀 흘려야 하는 현대 사회다. 그러나, 과연 돈의 진정한 의미는?

아주 긴 변명

소설을 통해 남자가 아주 긴 변명을 늘어놓으며 되짚는 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이면서 돌아보지 않은, 그러면서도 자신의 치부를 자신에게로 되비친 거울 같은 존재였던 아내와의 관계인 동시에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애써 외면한 자격지심과 열등감으로 뭉친 자기 내면의 어둠이었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지금껏 우리에게 사랑의 무수한 변주곡을 들려주었던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새 소설은 지금 사랑이 끝난 자리에 서 있습니다. 온 몸과 마음을 녹여 버릴 듯 뜨거웠던 그 사랑은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요? 그리고 그 열기 식은 자리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꽃이 제 몸을 불살라 언젠가는 싸늘한 재로 변하듯, 타오르는 사랑이란 스치고 지나가는 열병 같은 것일 뿐, 사랑의 끝에는 언제든 고독한 자기 자신만이 남는다는 비극적 진실에 울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일까요?

인간의 기본

‘인권’이라는 개념이 인류 역사에 등장한 것은 18세기 후반의 일이다. 하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인권을 누리는 행복한 삶인지는 시대와 사회적 조건에 따라 늘 달랐다. 전쟁의 광기가 시대를 압도하던 때에 사람답게 살 권리 따위는 꺼져가는 촛불처럼 애처로웠고, 인간의 힘을 넘어서는 엄청난 재난 앞에서는 목숨마저 부지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전쟁이나 재난 등의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인권이 유기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보편적인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마땅한 것이 바로 ‘인권’이라는 마지노선이 있기 때문에 인권을 유리한 사건들이 그렇게 오랜 세월을 두고 비판대에 오르는 것일 게다. 반면 인간의 일상생활은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무수한 제약들로 난무한다. 개인이 속해 사는 사회의 안전한 질서 유지와 사람 하나하나의 자유가 상충하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 권리는 자유를 요구하지만 안전과 질서는 통제와 제약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는 어쩌면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딜레마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한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삶이 무엇인지, 나답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게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개인은 마음 내키는 대로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구가하고 싶어 하지만, 국가라는 체제 안에서,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는 한은 온전한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다. 이 상반되는 가치 속에서 어떻게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기본을 지키며 균형감 있게 살지는 각자의 몫이다. 때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에도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개인이 구가할 수 있는 자유가 절대적이지 않은 이상, 상대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내적 욕구를 확인하는 일은 그것이 어느 정도 허용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기회이며 또 이 세상에는 많고 많은 생각과 의견이 있다는 것을 아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소노 아야코의 이 글 역시 일독의 가치는 있을 것이다.

임신 캘린더

나는 흔히 부푼 가슴과 벅찬 설렘으로 얘기되는 출산과 결혼을 앞둔 여자의 이율배반적인 심리를, 막연하고 모호하고 미묘한 흔들림을 이토록 정치하게 그려낸 소설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맞닥뜨려야 할 현실, 코앞에 있는 현실 저 너머로 돌려진 여자들의 허망한 눈길과 그 서늘한 외로움을 이렇듯 환상적인 필치로 그려낸 소설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 작품집의 진정한 매력은 무엇보다 작품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의 혼란스러움, 그 혼란스러움으로 우리 가슴에서 되살아나는 다양한 감정의 미궁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김난주 (옮긴이)

자신의 취향으로 자신을 단련한다

‘인권’이라는 개념이 인류 역사에 등장한 것은 18세기 후반의 일이다. 하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인권을 누리는 행복한 삶인지는 시대와 사회적 조건에 따라 늘 달랐다. 전쟁의 광기가 시대를 압도하던 때에 사람답게 살 권리 따위는 꺼져가는 촛불처럼 애처로웠고, 인간의 힘을 넘어서는 엄청난 재난 앞에서는 목숨마저 부지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전쟁이나 재난 등의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인권이 유기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보편적인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마땅한 것이 바로 ‘인권’이라는 마지노선이 있기 때문에 인권을 유리한 사건들이 그렇게 오랜 세월을 두고 비판대에 오르는 것일 게다. 반면 인간의 일상생활은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무수한 제약들로 난무한다. 개인이 속해 사는 사회의 안전한 질서 유지와 사람 하나하나의 자유가 상충하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 권리는 자유를 요구하지만 안전과 질서는 통제와 제약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는 어쩌면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딜레마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한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삶이 무엇인지, 나답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게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개인은 마음 내키는 대로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구가하고 싶어 하지만, 국가라는 체제 안에서,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는 한은 온전한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다. 이 상반되는 가치 속에서 어떻게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기본을 지키며 균형감 있게 살지는 각자의 몫이다. 때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에도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개인이 구가할 수 있는 자유가 절대적이지 않은 이상, 상대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내적 욕구를 확인하는 일은 그것이 어느 정도 허용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기회이며 또 이 세상에는 많고 많은 생각과 의견이 있다는 것을 아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소노 아야코의 이 글 역시 일독의 가치는 있을 것이다.

창가의 토토

누구에게나 있었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자체로 귀중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세월을 건너 현대에도 읽는 이의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천방지축 오리무중인 주인공 토토는 테츠코 자신의 어린 모습이기도 하지만, 호기심 많고 때묻지 않은 천진한 눈으로 반짝반짝 주위를 살피는, 온 세계 어린이들의 그래야 마땅할 원래의 모습이기도 하다. - 김난주(옮긴이)

키친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셀 수 있거나 혹은 셀 수 없는 여러 가지 상처를 안게 된다. 셀 수 있는 경우는 자기 안에서 인식되어 새 살이 동을 수도 있겠지만 셀 수 없는 경우는 마치 카오스 덩어리처럼 내면에 자리하고 앉아 자신과 주변을 괴롭힌다. 새 살이 돋는 경우, 그 과정은 여러 다양한 모습으로 표면화된다. 폭력 같은 반사회적인 과정도 있을 수 있고 언어나 음악, 미술 같은 예술 행위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 과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요시모토 바나나는 가장 행복한 방법을 취하고 있는 듯하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초기 작품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상처 깁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첫 작품집인 <키친>은 행복한 `상처 깁기`의 원형을 보여준다. 졸업작품인 「달빛 그림자」에서 주인공 사츠키가 안고 있는 상처는 애인이 교통 사고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죽은 애인의 기억과 잃어버린 사랑 때문에 불면에 시달리지만 어느 날 안개처럼 다가온 『우라라』라는 신비한 여인과의 만남으로 애인의 환영을 보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눈다. 사치키의 상처는 애인의 죽음을 확인하는 순간 현실로 인식되고, 다리(죽음과 삶의 경계,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 위에서 헤매이던 의식도 다리 이쪽으로 돌아온다. 즉 새 살이 돋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작품으로 사츠키와 비슷한 아픔을 (그녀 역시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 안고 있는 『우라라』라는 여인은 오컬트적인 신비한 힘을 지닌 천사이며 영매이며 의사이다. 그녀의 다가옴, 그녀와의 교감, 그녀의 선처 속에서 사츠키의 상처는 그 자리를 인식하고 이끌어간다. 데뷔작은 「키친」과 그 후편인「만월」에서도 이러한 `상처 깁기`의 과정은 되풀이된다. 단 하나의 혈친인 할머니를 잃은 여자 주인공 미카게에게 살며시 다가가는 유이치. 유이치가 자기 엄마(실은 아버지이지만)를 잃자 반대로 이번에는 미카게가 유이치에게 다가간다. 비슷한 상처를 껴안고 있는 자들의 교감에서 태어난 새로운 사랑은 「달빛 그림자」에서 예감할 수 있는 히토시와 사츠키의 관계에서 발전된 형태로 행복한 `상처 깁기`의 완성을 의미할 것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첫 작품집인 <키친>은 그녀의 전작품을 관통하는 여러 가지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녀의 소설에서 문제 삼고 있는 기본적인 테마인 `상처 깁기`를 비롯하여, 우라라란 인간형에서 볼 수 있는 오컬트적인 요소, 또 사츠키와 히라키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근친상간적 요소(히라기는 사츠키의 죽은 애인인 히토시의 남동생이다), 유이치의 엄마이며 동시에 아버지인 에리코가 상징하는 양성 구유적인 요소 등, 모두가 바나나 문학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집 <키친>을 읽는 재미는 행복한 환상처럼 우리들의 상처를 소리없이 감싸안는 따스한 이들과의 만남, 동시에 요시모토 바나나 문학의 원형과의 만남이 있을 것이다. - 김난주 (옮긴이)

혼자라는 건

‘혼자라는 건’, 쉽지 않다. 그것도 성인의 문턱을 겨우 밟은 스무 살 청년에게 불쑥 찾아온다면, 더욱이 쉽지 않다. (중략) 남겨진 유산도 거의 없어 절망의 벼랑 끝에 몰린 세이스케는 어떻게 삶을 유지할 것인가 하는 고단한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이런 때, 인간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비굴함으로 무장하고 주변에 기대어 현재의 사회적 위치를 계속하려는 선택도 가능하다. 또는 ‘혼자가 된’ 자신의 처지를 직시하고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는 선택도 가능하다. 이 선택의 기로에서 소설의 주인공 세이스케는 참 눈부시다. 그가 사회적인 가치와 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비굴해지지도 않았다는 점에서다. 그의 선택에 작용한 것은 삶을 지향하는 동물적인 감각과 균형을 이룬 선한 의지뿐이었다. 배고픔 앞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따끈한 크로켓 한 개 앞에서 한발 물러설 수 있었던 선한 의지야말로 그에게 인생의 새로운 문을 열어 준 열쇠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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