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기계가 아닙니다”
2년 전 이맘때 새벽 6시, 핸드폰이 울리며 화면에는 ‘엄마’라는 단어가 나타났습니다. 바쁜 아들에게 방해될까 봐 항상 문자로 먼저 ‘아들 통화 가능?’이라고 물어보시던 어머니의 전화를, 저는 받지 않고서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전화를 받고 핸드폰에서는 어머니의 흐느끼는 소리만 흘렀습니다.
그날은 저의 첫 반려견 아직도 보고 싶은 ‘슈나’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날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저의 반려견은 정말 행복했을 거라 말씀하시지만, 부끄럽게도 슈나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정말 착한 천성을 타고난 강아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외부 소리에 짖는다고 전기충격기를 이용해서 짖음을 고쳐보려고도 해봤습니다. 물론 짖음이 멈추기는 했었지만, 목걸이를 했을 때 공포스러워하던 그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 눈빛을 보고 바로 슈나에게서 목걸이를 빼줬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슈나는 트라우마가 생겼고 목에 무언가를 두르기만 하면 공황발작과 같은 증상을 보였습니다.
바쁘다고 산책도 자주 시켜주지 못했습니다. 밥 잘 주고 아프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에 그 좋아하던 산책을 일주일에 2번 정도밖에 시켜주지 못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슈나는 반려견이 아니라 애완견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만 보고 이뻐하고 즐거워했을 뿐 슈나는 자신이 누려야 할 행복을 온전히 다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행동학을 배우고 트레이너가 되어 강아지는 어떤 동물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을 때 슈나는 이미 치매에 걸려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것을 슈나에게 해주고 싶어도 슈나는 제가 누군지도 알아보지 못했죠.
사실 수의사라는 꿈을 가지고 수의대에 입학한 후 학교에 다니는 6년 동안 저는 행동학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수의대에서 간단하게 행동학에 관한 공부를 하지만, 제가 학교를 다닐 때는 정규 교과과정에 행동학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수의대에 다니는 저에게 대부분의 친구들은 의학적 문제가 아닌 반려견의 행동문제에 대해서 물어왔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텔레비전에서 본 내용을 말해주던 것이 점점 이게 맞는 방법인가라는 물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선진국의 방법을 배워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람의 정신과처럼 미국에는 동물의 행동의학 전문의가 있었고, 체벌보다는 칭찬을 통해 교육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행동학을 공부하려 했을 때 주위에서는 많이 반대를 했습니다. 친구들은 너 그거 하다 굶어 죽는다고 했고, 부모님은 다른 수의사들처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질병을 고치는 수의사가 되길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물의 행동도 수의학의 대상이고, 꼭 질병을 고쳐서 생명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반려동물들이 버려지지 않고 안락사당하지 않고 보호자와 행복하게 사는 것도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습니다. 동료 수의사들의 말대로 그 누구도 저를 찾지 않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수십 번 들었습니다.
그러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도 출연 이전에 이 방송을 즐겨봤습니다. 최대한 좋은 정보를 솔직하게 말씀해주시는 것을 보고 좋아도 하고 도움도 되고 조금은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막상 직접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께 알려드릴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시작하게 되었고, 운이 좋게도 지금은 많은 분이 저를 알아봐주시고 사랑해주시며 방송 역시 더 사랑해주고 계십니다.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방송을 하면서 정말 보람되고 행복했지만, 힘들고 가슴 아픈 적도 많았습니다. 50번이 넘는 촬영 동안 많은 아이들을 만났지만, 아직도 연락하며 많이 좋아졌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이제는 연락이 끊겨 많이 좋아졌는지 궁금한 아이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문제행동을 가진 반려견의 보호자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개는 기계가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서 제가 하는 교육을 보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며 “선생님만 보면 개들이 180도 바뀌는지” 물어오실 때면 너무나도 부끄러워지며 얼굴이 붉어집니다.
이 방송은 저 혼자 하는 것이 아닌 피디님들과 작가님 그리고 감독님들이 모두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물 흐르듯 교육이 잘 되는 경우도 많지만 실패하고 실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려견들도 하나의 생명체이다 보니 제가 모든 것을 예측하거나 마음을 들여다볼 수는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런 모습들은 편집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방송의 모습만 보고 전문가가 한 번만 봐주면 기계의 on/off 스위치를 올리고 내리듯 아이들의 행동이 바뀔 거라 생각하십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와 같은 전문가들이 아무리 좋은 방법으로 교육시키더라도 보호자분들의 꾸준한 연습이 없으면 반려견의 행동은 절대 좋아지지 않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저는 아직도 공부를 합니다. 최근에는 바빠지면서 공부할 시간이 줄어들어 아쉽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벌써 모든 걸 다 아는 것 아니냐며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사실 동물행동학은 그 역사가 얼마 되지 않았고 말 못하는 우리 반려견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제가 공부를 계속하는 이유는 많은 보호자분들이 제가 슈나에게 했던 실수를 하지 않고 사람과 반려견이 서로 행복한 진정한 반려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이 책에는 그동안 제가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와 함께한 몇몇 친구들과 반려견에 대한 좋은 정보와 교육방법이 적혀있습니다. 그간 방송에서 가장 많이 다루었던 문제행동들과 시청자게시판에 자주 올라오는 질문들, 그리고 보호자분들이 꼭 알아주셨으면 하는 내용들을 간략히 다루었습니다. 물론, 이 책 하나로 모든 것을 얻을 순 없겠지만,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반려견’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개에게는 정상행동인 것을 사람이 문제행동으로 인식한다”
기대와 우려가 뒤섞이며 시작한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와 벌써 3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1년에 1주 정도를 제외하고 매주 촬영을 하면서 느끼는 긴장감은 하지만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매주 어떤 아이를 만나게 될까? 내가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어림잡아 170번이 넘는 솔루션을 진행하며 많은 분들께 도움을 드리기도 했지만 이는 제게도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통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물을 사랑해서 수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했지만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로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정말 많은 보호자분들, 그리고 사람과 동물의 행복한 공존을 위해 힘쓰시는 분들을 만나면서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저 설채현이라는 사람의 인생을 바꾼 프로그램입니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 더 열심히 공부하는 수의사가 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고 이어지게 하는, 저의 가장 소중한 선생님과 같습니다.
거기다 더불어 저의 동생 세상이까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 세상이를 만났을때 과연 이 친구가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열까 걱정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이는 저희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친근감을 표시할 줄 알고, 문제행동이 있는 다른 친구들의 교육에도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제게 없어서는 안될 가족입니다.
세상에는 참 많은 강아지가 있습니다. 그중에는 행복한 반려견도 있고, 보호자는 행복하지만 정작 자신은 행복하지 못한 애완견도 있으며,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버려진 개들도 있습니다.
저는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통해 보호자는 행복하지만 정작 자신은 행복하지 못한 애완견, 그리고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버려진 개들도 모두 행복한 반려견이 되길 바랍니다.
세상이가 그랬던 것처럼.
동물행동학 전문서에서 반려동물 문제행동의 이유로 가장 많이 꼽는 첫번째는 바로 ‘개에게는 정상행동인 것을 사람이 문제행동으로 인식한다’입니다. 우리 가족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하고 타협하며 행복한 생활을 함께 하는 데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설채현, 반려동물 행동전문가, 수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