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을 시작하게 된 건 대학교 신입생 때 교수님이 거듭 강조했던 부분이었고 나의 취향에도 맞았던 듯싶다. 동양화 전공을 했던 만큼 선의 느낌이 중요한 부부을 차지하고 있었다. 크로키판을 만들기 위해 나무 합판을 잘라 잘 손질한 후에 늘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그 후로 수업이 끝나면 바로 아성 시내로 좀 늦은 날은 평택 기차역으로 사람을 찾아 떠났다.
하루에 기본 한 권으로 정하고 나가면 그림으로 한 권을 다 채우고 돌아와야 마음이 놓였다. 늦은 시간에 학교 실기실로 돌아오면 크로키북을 한 번 쭉 훑어보고는 책꽂이에 또 한 권의 크로키북을 올려놓는다. 매일 그 같은 일을 반복하다보니 사람들과 어울릴 시간도 없고 혼자다니는 것이 익숙해져 있었다. 그렇게 해서 쌓이는 크로키북을 보면서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들춰보니 드로잉이 반 년 주기로 변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 당시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을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보니 반 년 주기로 그림이 점점 향상되는 게 눈에 보였다.
무슨 일이든 처음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기초과정이라 눈에 보이게 변화를 느끼지만 실력이 향상 되고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여러 가지로 복잡 미묘해 진다. 그림을 그린다고 처음처럼 의욕만으로 그릴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도 보이는 대로 모두 그렸던 때와는 달리 사람이나 대상을 고르게 되고 점점 구체화된 형태로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