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엔 우리들만의 꿈이 있으며 우리들만이 고뇌하고 사랑하고 실천한 길이 있다. 우리들만이 세계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방식이 구조를 이루어 또아리를 틀고 있다. 우리들의 집단 무의식과 원형, 이미지와 상징들이 범벅을 이루고 있다. 그러니 이를 읽으면 진정한 나를 안다. 내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그토록 사무치게 한 그리움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기후 위기가 지구의 뭇 생명들과 인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시속 4킬로미터로 걸어가던 사람이 지금은 시속 100킬로미터의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것처럼, 우리는 예전 시대보다 25배나 빠른 속도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중금속이나 플라스틱과 같은 환경 오염 물질 배출도 차이는 있지만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숲을 파괴해 논과 밭을 갈고 목장과 집, 공장을 짓고 도시로 만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지구별은 깊이 병들었습니다. 가뭄과 홍수가 크고 길게 일어나고 태풍이 거세지고 빙하가 녹고 바닷물이 점점 높아집니다. 숲과 바다가 파괴되면서 이 지구별에서 거의 30%에 이르는 동물들이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도 어두울수록 별이 더 맑게 반짝이듯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생명을 위해 우리가 욕망을 절제하는 데서 더 행복감을 느끼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면 아직 길은 있습니다.
(…) 상대방에게 다가가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거기에 내 모습이 담겨 있고 내 눈동자엔 그가 담겨 있듯이 당신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당신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생명의 괴로움과 아픔을 자신의 것처럼 아파하며 그의 손을 잡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사람다운 일입니다.
필자는 철학을 전공으로 한 자가 아니다. 그러나 한 라디오 방송에서 "착한 이가 왜 더 고통을 받고 가난할까?"라는 화두를 받은 이후 그 의문을 끊임없이 해명하고자 하였다. 삶이 좀 버거웠는지 이어서 많은 의문이 떠올랐고 답을 찾아 지적 편력을 하였다. 그런 면에서 나는 철학하는 사람이다.
실로 많은 고통이 따랐고 시행착오도 많았다. 왜 내 선배들은, 나보다 더 깊이 철학을 이해했던 이들은 이런 질문들에 답을 해주지 않았던 것인가? 왜 한국의 어른들은 현실에 관심을 가지면 곱지 않는 눈으로 바라볼까? 자신이 발을 디디고 있는 현실에 문제를 던지는 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향해 고통에 찬 여정을 가려는 이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이것이 문외한인 내가 감히 이 책을 쓴 까닭이다.
향가와 『삼국유사』와 풍류도를 연구하는 인문학자인 내게 신라 중대 사회, 특히 불교와 풍류도가 맞서다 하나가 되는 과정은 오랫동안 관심사이자 수수께끼였다. 화쟁기호학을 이용하여 역사적 사실이 거울처럼 반영된 텍스트인 반영상과, 프리즘처럼 상상과 무의식으로 굴절된 텍스트인 굴절상을 종합하면서 세계관과 사회문화와 역사와 주체를 아우르며 살폈다. 그러자 그 시대의 비밀들이 오십칠 년간이나 권력의 정점에 있던 이사부를 계기로 술술 풀렸다. 그때의 황홀감은 무당에게 신이 내리고 춤꾼이 흥의 정점에 이르는 그 순간과 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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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문학자다. 아직은 소설가라 하기엔 부끄럽다. 『삼국사기』를 중심으로 놓고 『삼국유사』, 『화랑세기』, 『일본서기』, 봉평비문 등 금석문과 발굴보고서를 종횡으로 연결하며 사실과 사실 사이의 추론과 상상은 허용하였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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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가 ‘사람을 죽이지 않고 이기는 전쟁’이라는 불가능한 꿈을 꾸었다면, 나는 ‘역사적 진리’와 ‘실존적 성찰’을 종합하고 ‘악당이 없이 갈등을 형성하고 서사가 꾸며지는 소설’이라는 무모한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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