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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서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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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달빛의 향기>

달빛의 향기

작년 봄이었던가. 나는 빈 밭에 뭔가를 뿌리기 시작했다. 마음의 비는 내리고 있었다. 산문이라는 씨앗은 그렇게 해서 커왔다. 각기 다른 추억도 좋고, 살아가면서 느꼈던 단편적인 생각들을 밭이라는 자판에 두들겨 심었다. 이제껏 살아온 일들은 특별할 것도 없다. 하지만 내가 겪어온 이야기이므로 나에게는 각별한 시간의 기억들이다. 자연히 이 기회에 더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다행히 인간은 어려서의 기억도 오롯이 떠오르게 되니, 그 떠올림은 참 아름다웠다. 살아가면서 지나간 유년을 떠올릴 기회가 얼마나 될까. 삶은 늘 쫓기게 되니 말이다. 이제 나이도 나이거니와 이런 추억거리를 써보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아 보였다. 너무나 오랫동안 변화됨이 없는 삶을 살아온 것 같다. 그냥 흘러가는 세상을 바라만 본 것 같다. 진정 삶의 팽팽함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찾고 싶고, 또 행하고 싶다. 아무튼 살아가는 것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을 담아본다. 먹고 즐기는 것이 아닌 다른 영혼의 그 무엇으로부터 나를 던져 넣고 싶다. 그래서 진정 살아 있다는 것은 정신에의 새로운 갈망이 아닌가 한다.

윤비

세월이 흐르니 달라져 보이는 게 있는가 보다. 내가 바라보는 역사관도 그랬다.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에서, 역사는 어느 날 문득 반가운 손님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내가 어렸을 적 윤비는 분명 살아있었다. 역사의 측면에서 본다면 50년의 세월은 결코 짧지만은, 그렇다고 길다고도 말할 수 없다. 애초에 나는 이 소설을 쓸 생각은 없었다. 그저 역사에 관한 책들을 읽어 가면 그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도 욕심을 내게 되었고, 누구를 써 볼까, 하며 고심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느 날부턴가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윤비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려내고 있었다.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이처럼 문학은 운명 이 아니고서는 무어라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젊은 시절 내 영혼을 뒤흔든 전혜린도 그랬고, 그 이후, 친일을 빼고는 버릴 게 없는 춘원 이광수도 내 마음 한편에 자리했다. 쓰는 동안 그때마다 부족한 내용들을 보충하느라 쓰고, 공부하기를 반복했다. 4년에 가까운 세월이 되고서야 그런대로 윤비의 실체가 보이는 듯했다. 그래도 나는 이 기간 동안 대체로 행복했다. 무엇에 빠져든다는 즐거움은 그 어느 것에도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을,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유일했던 순간임을 기억한다. 이제는 모두 독자의 몫이 되었다. 윤비는 하나의 살아있는 실체였다. 윤비가 걸어온 길을 우리는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이 책은 윤비가 걸어온 험난한 여정의 길이기도 하다. 윤비는 낙선재에 살았어야 했다. 하지만 왕비는 궁궐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궁궐의 법도를 깼다. 스스로가 아닌 타의에 의해 돛대도 없이 떠다니는 몸이 되었다. 그렇기에 그 회한이 한으로 남아 평생을 굴욕과 비운 속에서 햇빛 한번 제대로 볼 수 없었음을 그 누가 알까. 나는 소설을 쓰기 전에 유릉에 잠들어 있는 윤비의 무덤을 찾아가서 그 앞에 고개를 숙여 당신의 삶을 그려보겠다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솔직히 소설을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서지 않았다. 10년 전쯤만 썼더라면 싶었다. 세상에는 윤비를 직접 만나본 사람을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평생 동안 윤비를 곁에서 모셨던 김명길 상궁이 쓴 『낙선재 주변』이라는 책을 구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그 금쪽같은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어디 그뿐인가. 김용숙의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와 춘원의 『민족 개조론』과 구한말의 실생활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나·소년편』, 김을한의 『인간 이은』 등의 많은 책들은 이 소설의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애당초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역사서적 300권쯤은 읽고 난 뒤에 쓰고 싶었으나, 겨우 절반쯤에 머무르게 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책들을 통해서 얻은 지식은 밑바탕은 되었을망정 이 소설의 활력소는 되어주지 못했다. 사실과 상상을 넘나들어야 하는 소설에는 사실 그대로를 그릴 수 없었음을 일러둔다. 그동안 여러 차례 드나들던 창덕궁의 후원과 낙선재. 어느 곳 하나 윤비의 눈길이 비껴간 곳이 있을까 싶다. 그곳엔 지금 윤비도, 덕혜옹주도, 영친왕도 있지 않다. 휑한 바람만이 주인을 잃은 낙선재 주변을 맴돌 뿐이다. 이 책이 윤비에게 있어 누가 된다면, 모두 용서하라고 윤비 앞에 큰절 한번 올리고 싶다. ‘마마! 이 소인 큰절 한번 받으시옵소서…….’ 청어출판사와의 인연에 깊이 감사한다. 저자를 20년 전쯤 어느 모임에서 한 번 보았다고 대번에 기억해내는, 놀라운 기억력을 갖고 있는 이영철 사장님께 고마움을 전하며, 아울러 편집자 여러분의 수고에도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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