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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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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큰글씨책] 이순신 홀로 조선을 구하다>

이순신 홀로 조선을 구하다

임진전쟁은 우리 민족이 겪은 가장 처절한 전쟁이었다. 그 서전緖戰은 불과 한 달 만에 한양이, 두 달 만에 평양이 일본군의 발굽 아래 짓밟히면서 시작되었다. 질풍과 같이 나아가던 일본군의 발걸음을 붙들어 세운 것은 이순신의 수군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을 이 땅에서 몰아낼 수 있었다. “내가 평생을 두고 경모하는 바다의 장수는 조선의 이순신이다. 넬슨이 세계적인 명장으로 명성이 높은 것은 누구나 잘 안다. 하지만 넬슨은 인격이나 창의적 천재성에서 도저히 이순신 장군에 필적할 수 없다.” “후세의 누군가 이순신을 위해 붓을 쥐게 된다면 조선의 운명은 이순신 덕분에 회복될 수 있었음을 기록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찬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인의 붓 끝에서 먼저 나왔다. 일본군과 악전고투하며 싸우는 이순신을 오히려 왕은 시기하며 죽이려 했다. 그는 두 번씩이나 백의종군해야 했다. 죽어서도 온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순신의 행장과 유고를 묶은 《충무공이순신전서》가 정조 때 간행되기는 했지만, 일부 식자층과 남해 연안 백성들을 제외하고는 이순신의 이름은 점점 잊히고 있었다. 그래서 이순신을 명장으로 높게 평가한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 같은 작가는 ‘이순신을 발견한 것은 메이지 일본 해군’이라는 말을 불쑥 내뱉었을 것이다. 이 책에 실은 《조선 이순신전》(1892)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모든 이순신 전기의 효시다. 임진전쟁에 참가한 일본 수군의 전모를 비판적으로 살피면서 이순신을 조명하는 내용이다. 이 소책자는 메이지 시기 일본에서 이순신 신화가 만들어지는 기폭제가 되었다. 신채호의 《수군 제일위인 이순신》은 이 책이 출간된 지 16년 후에야 쓰였다. 《조선 이순신전》은 박은식이 《이순신전》을 집필하는 데도 영향을 끼쳤다. 《조선 이순신전》은 일본 육군 장교들의 친목단체인 가이코샤에서 출간(기관지 《偕行社記事》의 부록)되었다. 저자가 누구인지는 논란이 있다. 책에 표기된 저자는 시바야마 나오노리柴山?則이다. 시바야마 나오노리의 서문이 들어 있고, 본문 시작 부분에 ‘육군 보병 대위 시바야마 나오노리’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그는 서문에 ‘벗 세키코세이惜香生가 조선에서 자신이 지은 ‘수군통제사 이순신전’을 인편에 보내왔다‘고 쓰고 있다. 또한 책 말미에 세키코세이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는데, 편지 속에서 세키코세이는 자신이 이 책을 집필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또한 원고를 살펴 바로잡아준 것을 사례하면서 출간의 가부를 판단해주길 희망하고 있다. 따라서 세키코세이가 저자이고, 시바야마 나오노리는 감수자이자 출판을 주선한 사람으로 보는 게 타당해 보인다. 한편 세키코세이가 누구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세키코세이惜香生’는 필명으로 판단된다. 송판권과 김준배는 《조선 이순신전》의 저자 세키코세이를 당시 외교관으로 조선에 와 있던 오다기리 마스노스케小田切万?之助라고 주장한다. 오다기리 마스노스케는 1887년부터 1891년까지 조선에서 근무하였다. 이 시기에 시바야마 나오노리 역시 조선에서 근무하며 지도 작성 등에 종사하였다. 송판권에 의하면 오다기리 마노스케는 세키코惜香 또는 세키코세이惜香生라는 필명을 사용하였으며, 시바야마 나오노리와 교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도 ‘세키코세이惜香生는 상해 총영사 오다기리 마스노스케’라는 1898년 기사를 확인하였지만, 단정은 보류하기로 한다. 당시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 정책을 취하면서 대륙 진출을 엿보고 있었다. 그들이 가장 위협을 느낀 대상은 러시아였다. 이 책은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일본의 해군력을 증강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쓰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한반도, 특히 한반도 남해안 항구의 지정학적 가치를 곁들이면서 임진전쟁 당시 일본 해군의 실패를 혹독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럴수록 이순신은 홀로 일본 수군 전체와 맞서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부각된다. 이순신을 나폴레옹에 맞서 영국을 구한 영국의 넬슨 제독에 비교한 최초의 문서도 이 책이다. ‘영국을 지켜 나폴레옹의 발굽 아래 들지 않게 한 것은 영국의 이순신, 넬슨의 공이요, 조선을 지켜 국운의 쇠락을 만회한 것은 실로 조선의 넬슨, 이순신의 웅대한 지략이었다’고 쓰고 있다. 메이지 일본 해군 역시 이순신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그 선두에 섰던 사람은 해군 내의 대표적 이론가이자 문필가였던 사토 데쓰타로佐藤鐵太郞와 오가사와라 나가나리小笠原長生였다. 사토 데쓰타로는 육군 중심의 국방전략에 맞서 해군 중심의 해주육종론海主陸從論을 설파하는 데 앞장섰다. 해군대학교 교관을 지내며 일본 해군의 전략 수립에 큰 영향을 끼친 사토 데스타로는 이순신을 깊이 연구하고 경모하였다. 자신의 이론을 집대성한 《제국국방사론》(1908)에서 그는 이순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1892년 처음 집필한 《국방사설》에서부터 이러한 생각을 가다듬어왔다. 사토 데쓰타로가 중장으로 진급한 이후 1927년에 집필한 〈절세의 명장 이순신〉은 이순신에 대한 그의 생각을 가장 잘 정리해 보여주는 글이다. 뿐만 아니라 메이지에서 다이쇼 시대 일본 해군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한편 오가사와라 나가나리는 일본 해군을 대표하는 문필가였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전쟁사 편찬에 관여하였으며, 해군대학교 교관을 지냈다. 《일본제국해상권력사강의》는 해군대학교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으로, 제5장의 대부분은 이순신과 관계된 내용이다. 이 책은 해군 장교들에게 큰 영향을 주어 이순신의 이미지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편 그가 1898년에 펴낸 《제국해군사론》에도 이순신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데, 일반인을 독자로 한 이 책 역시 일본 내에 이순신을 알리는 데 기여하였다. 메이지 일본 해군이 이순신을 연구한 이유 역시 자국의 필요에 의해서였다. 그들이 자국의 치부를 드러내며 임진전쟁의 실패를 되새기는 역사적 맥락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순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퇴색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그 후 이순신에 대한 온당한 역사적 평가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되는 데 메이지 시대 일본인들의 이순신 연구에 일정 정도 힘입었음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지난해 이 책을 기획하던 때는 이순신 장군이 전장의 포연 속에서 꽃처럼 산화한 지 420주년이 되는 해였다. 어느 날 우연히 지인 박행웅 씨와 러일전쟁을 일본의 승리로 이끈 도고 헤이하치로와 이순신 장군의 관계를 이야기하던 것이 이 책의 시발점이었다. 화제는 영국의 넬슨 제독과 비견되곤 하던 도고 헤이하치로가 자신이 넬슨과는 몰라도 이순신에는 한참 못 미친다고 말했다는 세간의 이야기와 시바 료타로의 글 속에 등장하는 일본 해군이 이순신을 군신軍神처럼 섬겼다는 이야기에서 그렇다면 일본 해군에서 이순신의 전술 전략을 가르치던 교재 같은 게 있을 수 있겠다는 데로 발전하였다. 그 후 여러 경로로 자료를 찾고 모았다. 다소의 우여곡절을 거쳐 필요한 자료를 모을 수 있었다. 이순신을 연구해온 박종평, 이종각, 김준배 등 여러 분의 연구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메이지 일본 해군에서 이순신을 직접 가르친 자료는 현재로선 오가사와라 나가나리의 《일본제국해상권력사강의》가 유일하다. 사토 데쓰타로 역시 이순신을 연구하고 일본 해군대학교에서 ‘국방사론’을 강의하였지만, 당시 그가 쓴 글 속에는 이순신에 관한 내용이 아주 소략하다. 다행히 나중에 그가 이순신에 대해 쓴 좀 더 길고 정리된 글이 있어 이 책에 수록하였다. 최초의 이순신 전기인 《조선 이순신전》은 메이지 해군은 물론 앞의 두 저자에게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3편의 글을 제외하고는 모두 내용이 단편적이거나 좀 더 시대가 흐른 다음의 글, 또는 전거가 불확실한 것들이었다. 도고 헤이하치로의 글은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순신을 알고 있었으리라는 추측은 가능해 보인다. 오가사와라 나가나리는 당시 일본 해군 내에서 도고 헤이하치로와 가장 가까웠을 뿐 아니라 대표적인 추종자였다. 여러 편의 전기를 집필하는 등 도고 헤이하치로의 영웅화에 앞장섰다. 사토 데쓰타로는 도고 헤이하치로를 영웅으로 만들어준 러일전쟁 당시의 쓰시마 해전을 승리로 이끈 최대 공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제2함대 참모로서 뛰어난 작전 계획을 수립해 일본의 승리에 기여했다. 《조선 이순신전》과 《일본제국해상권력사강의》는 일본 국회도서관 소장 자료를 텍스트로 하였으며, 〈절세의 명장 이순신〉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자료를 구하였다. 기획하고, 정보를 얻고, 문장을 가다듬는 데 박행웅, 박종평, 김준배, 이종각, 문일평, 박형균 등 여러 분에게 신세를 졌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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