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조의 여정은 마치 깊은 사색의 숲을 헤매는 것과 같다. 숲속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경치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나는 전통과 현대성, 유산과 혁신이 공존하는 곳에서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내려 한다.
시조집에 담긴 작품들은 내 내면에서 우러나온 사유와 감정의 증거들이리라. 자연의 속삭임을 듣고, 역사의 무게를 느끼며, 인간 내면의 미묘한 감정과 마주하려 한다. 전통적인 시조의 형식 안에서 자유롭기를 꿈꾸며, 나만의 시적 언어를 찾고자 애쓴다.
이 시조집을 통해, 나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문학적 대화를 시도하고자 했다. 이는 내 작품 활동의 지향점이자, 독자와의 소통 방식이다. 시조의 말들이 독자의 마음에 사유의 숲을 만들어 주고, 자신만의 사색과 성찰의 순간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 내가 바라는 바다.
하루 두 끼를 굶더라도 하루 한 줄 시조를 쓰자
“하루 두 끼를 굶더라도 하루 한 줄 소설을 쓰자”는 언론인이며 소설가였던 내 아버지 백결 최태응 작가의 좌우명이다. 이 얼마나 부끄럽고 나태한 나의 창작 생활에 채찍을 주시는 말씀인가.
이 글귀를 생각할 때마다 3장 6구 12소절의 한 올 한 올 떠가는 내 손길에 전율을 느낀다. 때맞춰 가슴 가득 차오르는 촌철살인에 대한 이 시대의 미션(mission)을 주체할 길이 없기에 오늘도 나는 펜을 들고 씨름을 거듭하고 있다.
책상 가득 펼쳐놓은 두 번째 시조집 원고들 위로 스승님이 보이고 들린다.
고故 일상一常 김광수 선생이 그립다, 아주 많이....
길지 않은 시작詩作 생활 동안 어리석은 까닭으로 몇 번이나 원고지를 밀쳤던 일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선생께선 내가 꼼짝 못 하고 펜을 다시 들게 하셨다. 사향師香 가득한 얼굴이 선연히 떠오르며 눈시울이 젖는다.
두 번째 시조집에서는 꼭 평설을 받고 싶었던 소망을 이루지 못하지만 누워계신 하동河東에 가 뵙고 나의 덜 익은 작품들을 들려드리고 싶다.
원고정리의 마지막 단계에서 나는 여지없이 아버지께 붙들렸다. 그를 만질 수 없는 쓸쓸함에 몇 날 밤을 눈물범벅으로 지냈다.
다음 달 초에 뉴욕에 간다. 부모님이 손잡고 계신 롱 아일랜드의 파인 란 메모리얼파크에 색색의 봄꽃 향기를 흩뿌리고 두 분 앞에 퍼질러 앉아 저물도록 넋두리하며 막내의 어리광을 풀어놓으려 한다. 시조집 펼쳐놓고 “날 닮았다 하소서!”라며 떼를 쓸 참이다.
나는 여태껏 삶의 9할도 넘는 날 동안 클래식 음악을 끌어안고 살아왔다. 셀 수도 없는 콩나물 대가리(음표音標)들을 들여다보면서…. 특별히 종교음악, 교회음악, 모차르트는 내 삶의 최고의 가치이다.
예순이 넘어 시작한 시작詩作이 내게 어울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부질없다는 생각에 짓눌려 여러 차례 도리질해 왔다. ‘음악이 세상에서 비할 데 없이 위대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내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다.
시조를 완성하는 과정 가운데 시조와 음악이 데칼코마니(Decalcomanie) 혹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느껴졌다. 그 매력에 빠져서 짓다 보니 ‘시조가 곧 노래’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언제나 가곡의 노랫말(가사)을 짓는 것처럼 시조를 쓴다. 완성 뒤엔 그것에다 내가 아는 한국 가곡의 멜로디에 맞춰 노래를 불러 본다. 그럴 때마다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편안함과 즐거움을 누린다. 시조의 음률 때문이다. 이제 나의 모든 시조는 나의 노래가 된다.
적잖은 이들이 죄의식 없이 헛된 바벨탑을 높이높이 쌓고 있는 작금의 세태에 시조시인은 사뭇 맘 둘 곳 없는 이들에게 위로의 붓을 움직여야 할 때라 여겨진다.
젊은이들의 시조에 대한 ‘우리의 것’이란 자긍심 고취와 관심, 시조의 길로 인도하기 등은 우리 모두의 큰 숙제이며 난제이다. 그들에게 공유와 공감을 얻어 내고 시조의 매력을 느끼게 해 주고픈 작은 바람에 늘 안타깝고 목마르다.
자신의 피와 뼛속에 시조의 밈(mem)이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나는 클래식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아카이브(archive)적 관점으로 접근한 작품을 낳으려 무던히 애를 기울이는데, 적잖은 외래어가 정형에 벗어나는 글자 수 혹은 주註를 통한 읽는 이의 이해도의 불확실성이 주는 염려 때문에 자주 허우적거리기 일쑤다.
어쩌다 심혈을 기울여 글자 수를 맞춰 우리말로 옮겨 놓을라치면 외래어가 주는 뉘앙스에 미치지 못함으로 느낌의 전달력 미흡에서 오는 불만족이 날 절망에 빠뜨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의 모자람에 속이 터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제대로 써 보려 기를 쓴다.
어느새 백목련이 내 집 곁의 공원에 터질 듯이 꽃 이파리를 내지르고 있다. 나무에 손을 얹고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박목월 시, 김순애 곡 「사월의 노래」) 작은 소리로 불러 본 오늘, 4월의 첫째 날이다.
7년 전 천리포 수목원에서 처음 만난 빅토리아 목련에 홀려 숨을 멈춘 채 꽃잎과 눈 맞추고 서서 바라보다 끝끝내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던 그때의 숨 막히는 설렘이 두 번째 시조집을 준비하는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날 휩싸고 있다.
아! 어쩌란 말인가!
서문을 써 주신 김흥열 고문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엉킨 실타래의 끝을 찾으려 우왕좌왕할 때마다 응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송현松玄 선생께 큰 절로 감사드린다. 살갑게 챙겨주며 이 책이 봄 햇살을 만나게 해 주신 〈열린출판〉 임직원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2023.봄
동탄 세령마실에서 - 시인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