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은 구체적으로 왜 남도답사 일번지인가? 이 물음에 대한 자세한 해답은 본문을 통해 자연스럽게 밝혀지겠지만 우선 여기에서 두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첫째, 풍부한 문화유산이다. 강진은 면적에 비해 유독 문화유산이 많은 곳이다. 그것도 남도를, 아니 우리나라 전체를 대표할 만한 문화유적이 수다하다. 고려청자 도요지, 전랴병영성과 하멜 억류지, 다산초당과 영랑생가, 무위사와 백련사 등이 그것이다. 대구면 사당리 도요지는 한국 예술의 최대 걸작품으로 손꼽히는 고려청자의 성지이다.
병영면에 있는 전라병영선은 조선조 500년간 전라도 육군의 총 지휘부이자 우리나라를 서양에 최초로 소개한 하멜 일행이 약 8년동안 억류생활을 했던 곳이다. 도암면에 있는 다산초당은 이 땅에서 가장 추앙받는 학자요 사상가인 정약용이 500여권의 명저를 남김으로써 유배문화를 꽃피운 것이며, 강진읍 영랑생가는 남도의 소월로 불리는 김윤식이 빼어난 서정시를 낳은 현장이다. 그리고 성전면의 무위사는 수월관음도 등 불교벽화의 보고이며, 백련사는 유명한 백련결사운동의 본거지이다.
둘째,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다. 강진의 산하는 산과 수가 서로 조용하며 빼어난 풍광을 연출한다.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월출산이 동서로 길게 팔을 뻗어 탐진만 깊숙히 남해바다를 불러들인다. 동쪽으로 수인산, 부용산, 천태산이, 서쪽으로는 만덕산, 덕룡산, 주작산이 호수처럼 잔잔한 탐진만의 수면 위에 제 그림자를 빠뜨리며 유유자적 하는 곳, 소박한 마을들이 산기슭이며 바닷가에 포도송이처럼 열려 있는 곳 그리고 부지런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곳이 강진의 산하다. 따라서 남도 특유의 유장하고도 질펀한 맛과 멋이 넘쳐나는 강진의 산하는 한국인의 원형적 고향이라 할 만하다.
마음의 심연에 가라앉은 낡고 오래된 것들의 덕목을 건져올려 다시 말갛게 씻어 말리고 싶었다. 그 깊이와 향기로 천리를 가고 싶었다.
현대라는 시간을 믿지 않는다. 내 시는 끝까지 문명의 반대편에 설 것이다. 오래된 미래를 살 것이다.
마음이 자꾸만 바다와 섬 쪽으로 집을 짓는다. 그 오두막집엔 서늘한 외로움만 살 것이다.
2014년 가을 초입
첫 시집 같은 두번쨰 시집이다. 그간 나는 생활과 시 어느 한쪽에서도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였다. 세상과의 싸움은 참담하였다. 마음은 자꾸만 어디론가 유배를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그시 견디는 일은 오늘 나의 힘이다. 후미진 남쪽 바닷가를 중심으로 여행 시편이 많다. 정착지 못한 생을 살았으니 마음이 천지를 다 헤매는 듯하다. 이제 모나고 다친 마음이 둥글어지고 싶다. 그리고 세상과 시에게 정식으로 악수를 청한다.
6년 만에 세번째 시집을 엮는다. 제 깜냥에는 열심히 쓴다고 썼으나 워낙 천성이 게으르다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두번째 시집을 다시 읽고 나서 이번 시집 원고를 정리한다. 놀랍게도 울음 대신 웃음이 늘었다. 그러나 이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다. 다만, 더이상 징징거리지 않기를, 각진 마음의 기슭이 둥글어지기를 바랐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바란다고 그것이 온전히 다스려질 일이던가. 여전히 마음의 골짝이 춥다.
다시 직장을 얻어 목포로 내려온 지 6년째를 맞고 있다. 강진→목포→광주→목포. 지금껏 내가 걸어온 생의 행로가 이토록 단출하다. 적막하고 척박하기 그지없는 한반도 서남부 변방 목포. 그러나 그 변방이 내 생의 고향이요 종착이다. 내 시도 여기에 끝까지 닻을 내릴 것이다. 그리하여 결코 문명과 권력의 아수라장으로 나아가지 않고 나의 뿌리인 남도에 남아 유순한 자연과 함께 스스로 중심이 되어 살아갈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바다를 소재로 한 시편들이 많다. 목포로 복귀하면서부터 바다는 최대의 시적 관심사가 되었다. 한동안 바다가 끼고 있는 섬들과 갯벌과 물고기와 어촌민들의 삶과 친해지고 싶다.
한 사람이 다녀갔다. 다녀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기다림의 어깨는 한쪽으로 기울었다.
짝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안타깝고도 황홀한 사랑의 방식이다. 오늘도 나는 그 그림자 속에 스스로 갇혀 공허한 행복감에 떨며 우두커니 서 있다.
오랜 망설임 끝에 누추한 사랑의 편린들을 하나로 묶는다. 사랑시의 진정성을 이야기하고도 싶었다. 긴 시와 짧은 시를 교직시켰다. 그러나 모두 사랑을 잃은 자의 노래다.
뒤돌아보는 자여, 네 모습이 쓸쓸하다.
2017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