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한 해 동안 문학잡지에 발표된 시작품들 중에서 101편을 선정했다. 선정된 시들은 다양한 제재와 주제의식과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덧 우리 시단의 흐름은 몇 가지의 양상으로 분류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 따라 많은 시인들의 작품을 수록하지 못한 한계가 크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이 선집의 선정 기준은 작품의 완성도를 우선적으로 내세웠지만 독자와의 소통적인 면도 중시했다. 시인의 주관성이 지나쳐 소통되지 않는 작품들은 함께하지 않은 것이다. 난해한 작품들이 워낙 많아 어느 정도를 난해한 수준으로 볼 것인가는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선집은 그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시인들의 시작품을 우열로 가릴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선집은 우열의 차원보다는 우리 시단의 흐름을 파악해보려는 의도로 작업했다.
선정 작업의 책임감을 갖는다는 차원에서 작품마다 해설을 달았고 필자를 밝혔다. 필자 표기는 다음과 같다.
이혜원=a, 맹문재=b, 임동확=c
촛불혁명 뒤 처음으로 치를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촛불정부가 열렸지만 우리 사회의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지 한 해 동안 역력히 보았다.
차원이 다르지만, 좋은 시를 쓰는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많은 독자들이 이 선집에 실린 시인들의 노고를 인정해주고 응원해주기를 희망한다. - 엮은이들의 말
인간 중심, 남성 중심, 현실 중심의 풍토에 역행하는 주변적인 것들을 그린 시들에서 나는 미약하지만 귀중한 통찰을 발견한다. 중심이 아닌 것에 대한 관심은 모든 생명을 유지시키는 생물적 다양성, 나아가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길이다. 다양한 개체들이 균형 있게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생태계나 문화계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 우리들 삶의 조건은 점점 자연에서 멀어지는데, 여전히 자연을 노래하는 시들이 많다. 현실 저편은 시가 늘 기대왔던 낭만이거나 희망이다. 문명의 몸살을 앓고 있는 시대에 자연의 노래는 진정한 소통과 살아있는 관게의 회복을 희구한다. 그것이 크고 화려한 목청은 아니지만 귀한 소리이고 오래 지속될 것임을 안다.
이 시대에 시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가를 고민하면서 '적막의 모험'이라는 제목을 떠올렸다. 저 검은 문자에 붙드려 고군분투하는 행위가 그러하고, 외롭고 쓸쓸한 자리를 스스로 선택하고 지키는 자세가 그러하다. 시를 통해 적막 너머 세상의 소요를 관통하고 또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다. 시는 언어의 뼈와 살을 다듬는 골똘한 시간 속에서 최고의 유희와 미학으로 실현된다.
나는 목청 높여 울분을 토로하거나 재바르게 새로운 담론을 창출하는 강렬한 시들보다 묵묵히 자신의 세계를 형성해가는 시들이 좋다. 겉으로는 차갑고 속은 뜨거운 시가 좋다. 검은 언어의 사슬 속에 빛나는 속살을 감추고 있는 시가 좋다. 시의 '적막한 모험'을 지켜보는 비평은 그보다 더 적막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적막 속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아름답고 치열한 꿈을 발견하는 것은 항상 설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