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 책은, 닐이 <신과 나눈 우정> 433쪽에서 “빛을 구하지만 자기 ‘어둠’을 다루는 법은 몰라서 바로 그 자리에 있는 선물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 책을 누구에게나 추천합니다. 그 책을 읽으면 삶을 바꿀 수 있습니다.”라고 언급해서 알게 된 서적입니다. 이 책은 미국에서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번역된 서적을 읽으면서 유익한 내용이 들어있다는 것을 직감하였지만, 국내에서는 흐지부지 절판되어서 안타까워하던 차, 번역을 수정하기 시작한 작업이 새로 번역을 해서 정식 출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작가인 데비 포드에게 의구심도 있었지만, 실제 ‘그림자 작업’을 하면서 체험한 내용에 기반을 둔 치밀함을 확인하며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인간을 ‘몸’의 관점에서 본 프로이드와 ‘영혼’의 관점에서 바라본 칼 융이라는 양대 산맥 사이에 모든 심리학이 있습니다. 융의 ‘그림자 작업’은 자신을 영혼으로 인식할 기회를 제공하며, 우리가 출판했던 <영혼수업>의 맹점盲點 마스터와 같은 맥락입니다. 이 책은 신나이의 ‘나아닌 나非我’, 불교의 ‘무아無我 공아空我 진아眞我’, 성서의 ‘네 눈의 티 내 눈의 들보’ ‘황금률’, 유학의 ‘충서의 도忠恕之道’, 동학의 ‘각지불이各知不移’, 도가의 ‘연금술’에 관한 실용적 정보를 제시합니다.__
이 책의 원래 제목이 ‘빛을 쫓는 사람들의 어두운 면’ 입니다. 즉, 더 밝아지고, 선해지고, 우월해지려는 존재들의 ‘그림자’를 말합니다. 특히나 영적인 길을 걷는 분들이 보편적으로 누구에게나 다 적용되는 정답은 없음에도 불구하고(진리는 있지만), 오직 각자의 존재됨됨이에 따른 고유한 개별적인 체험만이 있을 뿐인데, 외부로 답을 찾으러 다니는 모습을 봅니다. 특히 특정 스승이나 단체의 기법을 통해 깨달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밝은 그림자’라고 합니다. 각자의 내면에 각자만의 정답이 있음을 이론으로는 알지만,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몰라서 답답해하다가 외부의 대상을 쫓아다니지만, 결국 실망스러운 결과를 초래하는 바로 그런 현상입니다. 깨달음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자신의 우월성을 인가받아서 혹 한 소식하면 주위에 해결하지 못하는 여러 문제가 한방에 해결되리라는 기대를 품기보다, 시간을 견디어 삶을 마스터해가는 구체적인 방법이 여기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현재 국가를 이끌고 있는 중심 두뇌(정치 집단들)에게 실력이 없으니 덕택에 많은 수족(국민들)이 고생하고 있긴 하지만, 많은 교훈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자신의(의식이 진보했다고 여겨) 물질 욕망을 대변하는 보수주의자를 미워한다면 그들이 바로 자신의 그림자인 셈이지요. 현 정권의 행태에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다면, 아마 더 지독한 골통 정권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속한 가정이나 소 공동체에서 자신도 그들과 유사한 맥락의 행태를 저지르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다수 부모가 자녀들에게 그런 식으로 대합니다.)
우리가 미워하는 북한과 일본은 ‘어두운 그림자’, 부러워하는 미국은 ‘밝은 그림자’입니다. 3D업종에 종사하는 조선족이나 동남아인들 중국산에 대한 태도는 얼마 전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 대접받던 우리의 모습입니다. 일본의 역사 왜곡은 못마땅해 하면서 고구려보다 신라를 내세우는 우리의 역사 왜곡에는 침묵하고, 일제의 만행은 규탄하지만 베트남에서 벌어졌던 따이한의 행위는 미화하고, 항일 투쟁은 독립운동이라고 하면서 팔레스타인의 저항은 테러로 여깁니다. 개인관계에서처럼 국제관계도 한 국가의 주류 국민의 내면 성찰이 없으면,(극복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될 것입니다. 한때 중국을 사대事大하던 우리는, 지금 약소국을 사소事小하고 미국을 제대로 사대하지 않으면 강국으로 떠오르는 중국을 섬기는 역사가 반복될지도 모릅니다. __________
우리 신업공동체는 <신과 나눈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 영성을 함양하고, <영혼 수업>(영성심리학)을 통해 각자 개별 영혼의 목적을 알아내며, <그림자 그리고>를 통해 그림자 통합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자기 존재의 정체성(자신이 진정 누구인지)을 알려는 ‘내면 탐구’란 힘든 길을 함께하겠다고 동의하시는 분들과 나눌 수 있습니다. 신나이에 언급되듯이 삶은 발견하는 과정이 아니라 창조하는 과정이기에, 명리학에서 운명을 제대로 보려면 두 달은 함께 생활해야 했듯이 자신의 소명을 알아내서 자신의 길을 정하는 것도 어느 정도의 시간과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책에서 제시하는 그림자 통합 과정을 통해 상호 완전해질 수 있는 마스터할 기회를 갖자는 것입니다.
묵자 ? 노자 ? 논어 ? 맹자가 중국에서, 불경이 인도에서, 성서가 로마에서 시작되었듯 이 서적은 미국에서 나온 서적입니다. 어쨌든 미국이 세계의 중심인 것은 우연이 아님을 실감합니다. 아울러 우리도 원효나 다산처럼 외부의 것을 잘 소화해 새로운 것으로 재창조해서 세계 영성의 중심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음식과 건강
주변의 많은 분이 지금은 육식하지 않고, 밥을 잘 먹고 있으니 건강식을 하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는 현상에 접하여, 그것에 관해 우리가 탐구한 정보를 공유하여 이 땅의 구성원들에게 먹을거리에 관련한 진실을 인식하는 기회로 삼고 싶습니다.
서적 <내일의 신>에서 “제대로 먹어라. 너희는 자신이 섭취하는 음식으로 자기 마음을 둔감하게 하며 몸을 죽이고 있다. 그 영향은 느리고 잠복하는 성향이 있다. 너희는 그 영향이 실제로 발현될 때까지 그 일이 진행됨을 알지 못하다가, 나중에 그것을 되돌리려 할 때 그건 대단히 어렵다.”라고 언급합니다. 특히 ‘단기적 욕망’, ‘지나친 것’에 관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고기와 단팥빵’을 자신의 제사상에 올려달라는 어느 분의 표현은 ‘단기적 욕망’을 쫓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과지방의 해로움은 알고 있어서 이제는 많은 분이 육류에 관한 경각심이 생겨서 다들 조심하지만, 그래도 고기 먹어야 힘이 생기고, 사골이나 우유를 많이 먹어야 뼈가 튼튼해지며, 좋은 단백질을 먹으면 훨씬 몸이 좋아지리라는 기대로 기회가 되면, 특히나 회식 때에는 고기를 먹는 것이 일상화된 실정입니다. 게다가 과거에 가난해서 못 먹은 한에 관한 반대급부로 자녀들에게는 육류 등을 마음껏 먹게 합니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과잉 섭취한 단백질 때문에 몸은 빨리 성장하고 튼튼해지는 듯하지만, 알다시피 몸은 영양분을 단기적으로 글리코젠으로 저장해 쓰고 소비하고 남는 열량을 장기적으로 중성지방, 즉 비계로 저장하기에 이것이 계속되면 비만에 이르게 됩니다. 사실 단백질은 1일 필요량만 있으면 됩니다.(1일 단백질 필요량도 과대 포장되어 있음) 그것도 식물성 단백질로도(필수 아미노산에 관한 정보도 직접 조사해 보시길.) 충분합니다.
어떤 단백질을 먹어도 장에서 아미노산으로 분해해서 간에서 다시 몸에 필요한 단백질로 합성하기에 사실상 더 좋은 단백질이 몸에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고단백 특히나 동물성 단백질은 고高산성식품이기에 체액의 농도를 맞추기 위해 알칼리원소인 뼛속(특히 치아)의 칼슘을 빼내므로 치주염.골다공증.관절염.통풍 등을 유발합니다. 또 쓰고 남은 열량은 더는 저장할 곳이 부족해지면 중성지방으로 피에 남아 피가 끈적해지는 고지혈증(대부분 의사는 이 증세를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고 다만 조심하라고만 합니다만, 이 증세가 여러 요인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이 증세에서 혈관계 질병 대부분이 시작되는 아주 심각한 증세입니다. 이 상태에서 좀 더 증세가 악화해야만 의료기관에 돈벌이가 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이 되면서, 처음에는 몸의 이상 증세가 가끔 일어나기 시작(각자의 몸 상태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 다양합니다.)하면서, 동맥의 벽에 기름찌꺼기를 형성하여 고혈압, 협심증, 심근경색증, 중풍, 혈관성치매, 치아 문제, 골다공증, 관절염, 통풍, 류머티스, 백내장, 신장염, 담석증, 동맥경화, 부종, 요통, 피부노화를 일으킬(대부분 병의 원인임) 수 있습니다.
그러니 튼튼한 뼈와 맑은 피를 유지하려면 단백질 섭취를 절제할 수 있어야 하고, 칼슘을 잘 섭취하여 원활한 ‘칼슘 대사작용’(몸에 중요한 이 칼슘을 제대로 섭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것도 깊은 공부가 있어야만 합니다. 칼슘이 풍부하다고 알고 있는 우유, 설렁탕, 멸치 등에서 칼슘 섭취는 거의 어렵습니다. 오히려 뼈의 외형은 커지지만, 단백질과 나트륨 등의 과다 섭취로 뼛속의 밀도가 줄어들어 골다공증이 진행됩니다.)을 돕는 게 중요합니다. 또 몸에서 자동으로 필요한 양만큼 정확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콜레스테롤은 사람의 몸에 꼭 필요한 성분이지만, 칼슘이나 단백질을 섭취하려고 먹는 동물성 식품에 있는 동물 단백질이 반드시 함께 섭취되어 피에 고지혈증을 일으키는 데 일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요인으로 혈중에 인슐린이 충분히 있어도 결국 포도당을 세포로 전해주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상인 ‘인슐린 저항성’이 생기면서 일명 ‘대사증후군’(병증은 있지만, 인과가 명확하지 않거나 복잡할 때 증후군이라는 표현을 씁니다.)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 성인병(비만.동맥경화.고혈압.고지혈증.당뇨.지방간.골다공증.치매 등)이라고 불리던 병은 제대로 탐구해보면 거의 먹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린 나이에도 걸리기에 성인병이라고 부르지 않고 ‘식생활습관병’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관찰한 먹을거리에 관련해 나타나는 현상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육류섭취에서 시작해 단백질 선호(특히 고단백)로 나아가고, 그다음 대부분 자신이 육류섭취를 잘하지 않기에 건강식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탄수화물중독(당중독)에 이르더군요. 개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이때부터 인슐린 저항성이 시작되어 발생하는 저혈당.비만.고지혈증.동맥경화.고혈압 등 다양한 병증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건강에 해로운 고기를 적게 먹고 건강식이라고 여기는 밥(당류)을 주로 먹기 시작할 때가 실제로는 악화한 순환체계가 병증을 막 드러내기 시작할 때인 셈이지요. 지방과 단백질을 섭취하다 ‘단기적 만족’의 효과가 빠른 탄수화물(당)로 바뀌면, 대부분 육류를(거의 무의식적으로) 멀리하기에 건강한 식사를 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식후 3시간 정도 지나면 간에 임시 저장된 글리코젠 분해 문제로 저혈당 상태가 되면 공복감을 느끼게 되고 먹을거리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배고프다고 찾습니다. 대부분 인체에서 가장 복잡하며 에너지를 많이 쓰고 포도당을 언제나 공급받아야 하는 뇌는 자동으로 당이 함유된 것들(커피, 과자 등 간식거리)을 끌어당긴답니다. 즉, 뇌는 자신이 필요한 당을 얻기 위해 몸을 자동으로 조종해 움직여서, 과자나 빵,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 커피(설탕이 듬뿍 들어 있는 커피믹스에다 설탕을 더 넣는 분도 있음), 흰 쌀밥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실을 대고 정제당을 신속히 섭취하려고 발버둥칩니다. 이때 당을 알아내는 능력은 대단해서 당이 들어 있는 먹거리를 무의식적으로 아주 잘 찾아냅니다. 심하면 갑자기 몸을 피곤하게 한다거나 졸음이 오게 해서 그 해결책으로 사탕.초콜릿.커피.매실(대부분 담근 매실 액의 70%가 설탕) 등을 찾게끔 조종하는 것이 대표적인 실례입니다.
실제 겪어보면 이때 그들은 엄청난 염력을 발휘하는데, 그것이 바로 당에 중독되어 나타나는 괴력 중 하나랍니다. 이것이 알코올 중독자가 눈을 뜨면 술을 찾듯이 욕망을 충족하려고 기를 쓰는 것임에도, 오히려 일부 사람들은 몸의 느낌을 자신이 존중한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실정입니다. 때로는 남을 조종해서 먹고 싶은 것을 사오게도 해서, 우주나 신이 베푼 기적으로 여겨 오히려 신이 자신의 소망(알고 보면 욕망임)을 들어준 것이니 신이 자신에게 나쁜 것을 기적으로 갖다 주지는 않았으리라고 합리화하기도 하지만, 속셈은 그래야 자신이 먹는 것을 선택했다는 것에서 회피하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이럴 때 욕망이(특히 뇌의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괜히 기분이 나빠져서 우울해지거나 주위에 신경질도 부립니다. 이때부터 이들이 당의 섭취를 줄이면 견디기 어려운 금단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니 결국 중독된 것입니다. 과단백질과 탄수화물이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보다 더 잠복적이고 심각한 중독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거의 접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중독되었다고 믿고 싶지(대부분 중독자가 자신이 중독자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듯이) 않겠지만, 사실은(특히, 내가 밥을 여러 차례 먹으면서도 건강식을 하고 있다고 여긴다면) 중독된 것입니다. 더구나 대다수 사람은 자신이 중독되어(대부분 중독현상이 그러하듯이) 있음에도, 그것을 인식조차도 못하고(당뇨에 걸려 있는지도 모르는 분도) 있습니다.
즉, 우리의 먹을거리에 관련한 중독은 육류중독 ⇒ 단백질중독 ⇒ 탄수화물중독(당중독) 순서로 진행됩니다. 특히 세 번째 당중독의 중반부에서 병증이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 식생활습관을 완전히 바꾸기로 결단하지 않는다면, 본래의 상태로 돌이킬 수 없는 병증(대표적으로 당뇨)으로 귀결됩니다.
그러면 정제당으로 된 음식 말고 뭘 먹어야 할까요? 단백질! 아니면 먹을 게 없다고요? 많습니다. 현미, 통밀 등 통곡식과 채소, 나물, 과일(될 수 있으면 껍질째 먹는), 해조류가 있습니다. 물론 식생활을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도 점진적으로 해보았지만, 결국은 100% 실행했을 때에야 제대로 효과가 있었습니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서는 어렵습니다. 외출이나 출근 시에 도시락도 각오해야겠지요. (어떤 분은 빨리 죽더라도 맛나게 먹겠다고 하는 분도 있겠지만.)
동학에서는 먹는 것을 ‘하느님’이라고 합니다. 먹는 것을 고귀한 생명으로 여기라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먹는 것을 자기 ‘욕구와 욕망’의 충족 대상으로 여깁니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한세대 전의 한恨으로 ‘먹는 게 남는 거’라는 핑계로 우리 사회는 지금 마음에서는 ‘물질창조 중독’을, 육체에서는 ‘식탐 중독’을 집단으로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제대로 된 정보를 손수 확인하여 생명의 음식을 선택하길 바랍니다.(masters.or.kr의 ‘건강과 음식’ 참고) - 옮긴이의 글 - 음식과 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