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30년을, 나는 시인으로 살며 고뇌하였다. 시가 감당해낼 수 없는 이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내 몸 속에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 가시에 고름이 잡혀 터질 즈음에야 초고를 썼다. 난생처음 쓴 소설이라 그런지, 문장이 난분분했고 뇌가 하명하는 대로 손가락이 수행해주지 못했다. 몇 년을 두고 가위질하여 다듬었고 바느질하여 매만졌다.
이 풍진 이야기는 내 상상력이 빚어낸 허구이다. 유년체험을 밑절미로 삼았고 어른들 말씀에 크게 기댔다. 굳이 골드만(L. Goldmann)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타락한 사회에서, 타락한 방법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이야기’를 쓰겠노라 용을 썼다. 그리하여 내가 만든 두 주인공을 붙들고 오래 웃었고 오래 울었다.
만석꾼으로 텅텅 큰기침하던 옆집 기와지붕들이 오늘따라 도두뵌다. 우포늪에서 날아든 왜가리가 용마루에 올라서서 화왕산을 꼬나보고 있다. 낯설고 생소한 풍경이다. 그렇다. 나도 저 텃새처럼 이 땅에서 태어나 여태 살고 있다.
조진기 교수님께서 곰살갑게 조언하시었고 <모아드림>에서 출판을 흔쾌히 맡아주었다. 해마다 봄밤이면 늪에서 건너와 내 귓가에서 쩌렁쩌렁 울어주던 소쩍새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무싯날을 잡아 향리 창녕 문인들과 둘러앉아 소주잔 나누고 싶다.
손자 사랑 자별나던 할머님 산소에는 지금쯤 구절초 향기 자욱하겠다. 고된 양파농사로 칠남매 책가방 들리시다 이제는 포근한 산천에 누워계신 부모님께 이 책을 바친다.
2017년 초가을, 사랑채에서 내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