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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최영철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56년, 경남 창녕

최근작
2021년 12월 <시와 문화 2021.겨울>

그림자 호수

오래된 스크랩북을 들추어보다가 십대 초반 멋모르고 이런저런 학생잡지에 발표했던 시들을 다시 읽으며 얼굴이 화끈거렸던 적이 있다. 누렇게 변색된 갱지에 찍힌 그 시들은 가당치도 않은 감상의 색채를 띠고 있었지만 그나마 간절한 자기구원이기는 했을 것이다. 그 마저도 없었다면 나는 초췌한 내 생을 수긍하지 못한 채 어느 모서리에선가 그만 맥을 놓고 말았으리라. 비틀대고 주저앉으려는 나를 여기까지 데려와준 시에게 크게 해준 게 없어 늘 미안하다. 따뜻한 아랫목에 앉혀본 적도 없고 부드러운 황금깃털을 달아준 적도 없다. 그런데도 쓰러진 나를 일으키는 지팡이가 되고 방만한 나를 빠뜨리는 수렁이 되어주었다. 단 한사람일지라도, 나 아닌 누군가에게 나의 시가 그런 그릇이었으면 한다.

돌돌

-노심초사의 즐거움- 난장에 나와 우왕좌왕 하다 보니 어느덧 파장 무렵이다. 내가 가지고 나온 물건이 낡고 투박한 것이어서 늦은 장터를 오래 지키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맵시 있는 것들을 가지고 나온 장꾼들이 물건을 다 팔고 떠들썩하게 더 큰 장으로 옮겨간 뒤에도 내 앞에는 여전히, 차마 버릴 수 없는 것들이 남아 있었다. 그것들이라도 챙겨 어서 다른 장터로 옮겨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차마 버리고 갈 수 없었던 이것. 땡처리도 할 수 없었던 이것. 등단 시점으로 치면 30년이지만 살아온 것으로 치면 60년을 보내며 내는 시집이다. 무척 즐겁고 애틋하고 뭉클하고 아프고 고되고 슬픈 길이었다. 너무 오래, 어눌한 말을 내뱉었다. 엄밀히 말해 그 말들은 하나도 나의 것이 아니었다. 세상의 파장이요 자연의 율동이었다. 나는 그것들의 말을 엿들은 염탐꾼이었고 누군가가 무심코 흘리고 간 말을 주워 담아 궁굴려본 흉내쟁이였다. 막다른 강마을에서 7년을 살았다. 둘 이상을 가지는 게 버겁고 둘 이상을 생각하는 게 차차 어려워졌다. 처음엔 퇴행인 줄 알고 낙심했으나 그것도 진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진보인 줄 알고 건너뛰고 넘어온 길들이 무지막지한 퇴행이 되고 있지 않은가.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하루 네댓 번이고 구멍가게도 하나 없고 이야기 통하는 사람 하나 없는 그곳을 나는 잘 살아냈다. 대화 상대는 내 안에 도사린 온갖 잡다한 나만으로도 충분했다. 내가 심심할까 봐 길고양이와 새들과 벌레들이 내 머리맡에 와 놀다 갔다. 勞心焦思. 평화로운 변방에 들어와 살면서 유유자적하지 않으려고 내가 나에게 내린 행동강령이었다. 노심초사, 참 가혹한 말이다. 그러나 나란 놈은 매사에 게으르고 요령부득이어서 이렇게 무언가로 딱 부러지게 닦달하지 않으면 옆길로 빠지기 일쑤였다. 하여 이런 어마어마한 지침을 하달하게 된 것이었다. 저만큼, 엉뚱한 길로 접어들고 있는 나에게 나는 ‘어이, 어디 가? 그리로 가면 길이 없어’ 하고 소리쳤지만 도통 먹혀들지 않았다. 인정사정없이 나를 체포해 올 수밖에 없었다. 풍경에 반하고 향기에 반하고 적요에 반해 혼미해진 나를 다그치려면 이렇게 단호해져야 했다. 노심초사. 사실 그건 새롭게 떠올린 말이 아니었다. 온갖 크고 작은 상념과 씨름했던 십대 중반에 이미 거머쥐었던 말이고, 그 뒤로도 희희낙락하려는 나를 내리치는 매운 죽비로 사용했던 말이었다. 아무 짓도 않고, 아무 생각도 않고 물끄러미, 잔잔하고 평화롭게 흘러가는 강만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노심초사의 죽비를 내리쳤다. 낙동강이 지척인 마을에서 태어나 그런지 나는 유순한 강을 좋아했다. 산과 바다도 좋지만 나는 분명 강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슬렁 유유자적 강변을 걸었는데 어느 날 불현듯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평화를 구가할 때가 아니지 않니? 세상은 더 오리무중이고 아비규환인데 너 혼자 달관할 때가 아니지 않니? 나는 강을 따라 팔자걸음을 걷고 있는 나에게 이렇게 추궁했고 곧 강변 산책을 그만두었다. 내가 바라볼 지점은 아직까지는 저 건너 도시 변두리의 시끌벅적한 난장이었던 것이다. ‘아직’이 아니라 어쩌면 죽을 때까지 도시 변두리의 번다스러운 일상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예감도 들었다. 얼마간 탐닉했던 강마을의 고요한 평화야말로 얼마나 나에게 불길한 조짐이었던가. 얼떨결에 주어진 평화를 서둘러 강물에 던져버리고서야 나는 안심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천만다행이었다. 더 이상 아쉽지도 그립지도 안타깝지도 슬프지도 않다면 그것이야말로 무료하고 무의미한 감옥일 것이다. 어떻게든 평화롭고 무료한 감옥을 탈출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서럽고 아픈 마음에 경배했다. 소음이라고는 가끔 짖는 개 소리가 전부였다. 개들은 그 고요와 평화가 불만이라는 듯 한번 짖기 시작하면 아무 대꾸도 없는 허공을 줄기차게 물어뜯었다. 그 소리에 나의 가슴이 콩닥거렸다. 저 녀석이 어느새 나의 나태를 알아버린 것일까? 그 의문에 답하듯 길 건너편 개들까지 합세해 더욱 요란하게 짖기 시작했다. 광활한 적요가 주는 평화를 깨고 개들은 그렇게 일정한 간격과 높이로 내 의식을 난도질했다. 이 적요는 불길하다고, 이 적요는 거짓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정적만이 뒷짐 지고 걸어다니는 골목, 지나는 행인도 없는 길을 향해 줄기차게 짖어대는 개의 항변은 분명 나를 향한 것이었다. 생각은 거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소리치는 동네 개들의 질타를 듣고 있다가 불현듯 이 말이 내게 왔다. 노심초사. 하늘이 나를 어여삐 여겨 나를 닦달할 매운 회초리 하나를 내려주신 것이다. 옳거니, 나는 얼른 엎드려 그 회초리를 받았다. 그리고 지금 그것과 함께 살고 있다. 나는 잠시도 쉬지 않고 세상 앞에 애태우는 마음 노동자다. 외람되고 염치없게도 나는 다시, 나에게 찾아와 줄 봄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오래 여러 번의 봄을 기다리게 될 줄 몰랐다. 나의 봄은 대부분, 봄을 기다리던 마음을 내려놓고 겨울을 수긍하려고 할 때쯤 찾아왔다. 이제 더 이상 그것은 나의 몫이 아니라고 끈을 놓아버릴 즈음 찾아왔다. 어김없이 오는 봄을 나는 늘 시험하고 의심했다. 봄을 기다린다 해놓고, 봄을 애타게 부르고 있다 해놓고, 정작 나는 어느새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녘에 나가보니 저만치 당도한 봄이 왁자지껄하다. 그들은 어느 귀퉁이에 숨었다가 느닷없이 나타난 게 아니라 나에게 건네줄 무엇인가를 들고 꽁꽁 얼어붙은 겨울들판을 건너오고 있었던 것이다. 출간을 앞두고, 7년을 살았던 강마을을 떠나 햇볕 좋은 바닷가 마을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강은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주었고 그 중 몇 줄기의 강물이 나와 동행해 주었다. 다시 나는, 돈 떨어진 건달처럼 가고 있다.

멸종 미안족

끊임없이 일어나는 상념들을 주무르며 혼자만의 시간을 지냈다 나의 시는 그 갈팡질팡의 상념들을 밑거름으로 숙성되었다 벼랑 끝 시간을 견디게 해준 시에 큰 빚을 졌다 고맙다, 시여 언제나 그랬듯 외롭고 가난한 것들의 넉넉한 말동무가 되어라 최영철

엉겅퀴

나는 이것들을 피의자 진술서를 쓰듯이 썼다. 무기정학 직전, 반성문을 쓰듯이 썼다. 혹시나 누가 볼까 두려워하며 썼다.

일광욕하는 가구

다섯번째 시집인데도 처음 같다. 부끄럽고 주저하는 초심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나를 흔들어준 시간들이 고맙다. 그 해 늦가을 한나절의 뇌 수술을 받고 깨어났을 때 그 죽음의 고비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 안에 쌓인 찌꺼기들을 다 걸러낸 느낌이었다. 조금 심심하고 외롭지만 그래서 더 행복하다.

찔러본다

내 게으름의 핑계가 되어준 병 내 가난의 핑계가 되어준 시 그들과 함께 조금만 더 애절하기를 2010년 여름 도요마을에서

호루라기

언젠가는 현실의 더께를 걷어낸 백지 상태의 무적자가 되고 싶다. 계급을 떼어내고 등기필증을 떼어내고 거래명세서를 떼어내고 3대 보장보험을 떼어내고 문패를 떼어내고 싶다. 보장된 현재와 부푼 미래를 떼어내고 싶다. 나에게 시는 그 일을 원만히 수행하는 한 방편으로 여겨졌지만 오히려 질기고 모진 추구와 미련을 남겼다. 뒷걸음질을 칠 때가 되었다. 그리고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만들 때가 되었다. 그 적정선은 서로가 서로를 불러들이기에 알맞은 거리이다. 그보다 가까우면 너무 자주 서로를 부르게 될지 모른다. 그보다 멀면 부르는 소리에도 딴전을 피우거나 건성으로 답하게 될지 모른다. 너무 가까우면 부르는 소리에 태만하기 쉽고 너무 멀면 부르는 소리를 놓치기 쉽다. 응답하지 않아도 될 어떤 구실을 찾게 될지 모른다. 너무 과다하지 말고 너무 구차하지 말고 너무 뜨겁지도 말고 나의 내면은 그것들이 들어와 한바탕 외줄타기를 하며 놀다갈 만큼만 팽팽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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