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부터 여름까지 원고를 묶고 다듬고 고쳐 쓰며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무어라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들이 들락날락했어요. 막연하게만 꿈꿨던 ‘첫 책’이라는 두 글자가 이렇게 든든한 물성으로 실현되었다는 사실이 얼떨떨합니다. 아마 오래 그럴 것 같습니다. 꼭 한 번 만나고 싶던 음악가나 작가와 악수를 나눈 기분, 이번 생에 꼭 느끼고 싶던 풍경 속에 자리한 기분, 오랜 시간 사랑해온 줄도 모르고 사랑한 존재와 가까이서 눈을 맞춘 기분과 어쩌면 비슷할지요. 가슴 터질 듯 부풀고 심장 빠르게 뛰며 동시에 그대로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어지는 기분과도요.
저에게서는 이미 흩어지고 있는, 흩어져버린 돌멩이들을 당신 손에 건넵니다. 손안에 아주 자그마한 알갱이가 남기를, 잠시의 까끌거림과 반짝거림이 있기를 감히 소망합니다. 우리는 어디선가 반드시 만나게 될 거예요. 그 믿음으로 저는 다시, 또다시 살아갈 것입니다. 이제껏 그래왔듯 간절한 줄도 모르고 간절한 채. 뒤늦은 깨달음의 망연한 기쁨처럼.
언제나처럼 언어는 모래로 흩어지네요. 도무지 다 담을 수가 없네요. 깊은 밤처럼 아득하네요. 그러니 있는 힘껏 꾹꾹 누르듯 말해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미 소리 듣는 2024년 8월
최리외
끝끝내 붙들리지 않는 글자들을 어떻게든 붙들려는 절박한 몸짓은 끝도 없이 공중에서 공중으로 미끄러지고 추락하는, 우스꽝스러운 춤 (……) 이 이야기는 그렇게 번역되었다. 아무런 확신도 의기양양함도 없이, 들리지 않는 매미들의 울음소리 속에서. 무릎에 힘이 풀려 주저앉듯. 눈 감고 입 다물고 항복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