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계속 글을 쓰라고 한다면
첫 번째 책 『미처 몰랐던 세계사』를 완성하기 전후로 나는 줄곧 내가 ‘앨범을 한 장만 내고 접은 가수’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난 단순히 그런 ‘가수’가 되고 싶었다. 살면서 책 한 권이라도 내봤으니 어느 정도 성과는 이룬 것이다. 그래서 다시 교단으로 돌아가 역사 수업을 열심히 하고, 중학교 2학년인 나의 학생들과 지지고 볶고 지내면서 박사 논문을 잘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원래 내 계획은 그랬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듯 두 번째 책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말았다.
아마도 내가 모든 사람과 내 역사 수업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모양이다. 예전에는 교실에서 학생들과 수업할 수밖에 없었다면, 세상에 나온 책 한 권이 순식간에 물리적인 거리를 뛰어넘어 나를 전 세계와 연결시켰으니 말이다.
아니면 마침내 내 몸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집순이’ 영혼을 찾아내서일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일주일에 이틀 쉬는 날에는 누구도 만나지 않고 조용히 서재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사실 이것이다. 내가 선천적으로 마음이 약하다는 걸 편집자가 간파한 것! 나는 거절에 전혀 소질이 없는 사람이다. 친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유의 사람인 것이다.
내 안에 온갖 모순이 가득 차 있는 듯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수업’이라는 무대를 너무도 사랑하는 ‘작은 거성小巨星’인데 왜 문을 걸어 잠그고 집에 틀어박혀 글 쓰는 사람이 되었을까? 분명 내게도 냉정한 면모가 있다. 보이스 피싱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끊어버리며 상대가 내 인생의 소중한 몇 초를 낭비하게 했다며 욕을 해댈 만큼 한성깔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를 반년이나 매달리게 만든 이 작품은 도무지 거절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나는 알아서 정기적으로 원고를 넘기는 마조히스트적 성향마저 보였다.
역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에게 매우 엄격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술·담배도 안 하고 심지어 채식주의자였다. 그런데 그가 베르사유 조약을 폐기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강제 수용소를 설치해 민간인 100만여 명을 학살할 때는 역사상 그 누구보다 통제불능이었다. 윈스턴 처칠은 걸핏하면 밤새워 폭음을 즐기며 온종일 시가를 입에 물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이 가장 암울하던 시기에 영원히 타협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이며 영국을 빛으로 이끌었다.
나는 역사 교과서의 부족한 설명이 늘 마음에 안 들었다. 인성人性을 지나치게 간소화해서 사건을 단조롭고 재미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한 교과서 지식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실질적 도움이 될까? 과연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과제가 모두 객관식 문제일까? 네댓 가지 보기를 주며 그중에서 정답을 찾아가는 게 인생일까? 이는 곧 모든 인간의 삶이 평범하기 그지 없는 운명이라는 게 아닌가.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그래서 나는 역사 교과서 속 중요한 사건들 이면에 있는 이상야릇하고 어쩔 수 없는 것, 역사적 인물들이 느낀 방황과 고민을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사는 게 참 녹록지 않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그래서 나는 살아있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힘든 모든 과거를 글로 적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그 마음이 전해지면 좋겠다.
두 번째 책을 완성할 수 있도록 곁에서 애쓰고 수고해준 출판사 ‘평안문화’에 감사드린다.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며 글쓰기라는 거대한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를 준 나 자신에게도 감사한다.
끝으로 이 책을 나의 학생들에게 바치고 싶다. 아이들이 졸업하고 얼마의 시간이 흘러가든, 내 역사 수업이 언제나 그들과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