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라는 구호가 우리의 의식을 휩쓸고 있는 오늘날, 근대사회 건설의 기초였던 노동이라는 말은 어쩌면 진부해 보인다. 그 대신 어느새 우리 의식을 차지하고 있는 말은 소비, 유동성, 엘리트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빈곤이라는 말은 아마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날이 갈수록 결코 진부하지 않다. 한쪽에서 부의 축적이 가속화되고 그 반대편에서 빈곤의 심화가 가속화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는 결코 자유롭지 않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바로 그 이유를 우리들에게 알려 준다. 근대 초기부터 지금까지, 근대가 어떤 동력에 의해 진행되어 왔으며, 그것이 단계마다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지, 그리고 오늘날의 세상이 어떤 흐름을 지니고 있는지를. 우리는 왜 날이 갈수록 빈곤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며, 왜 두려움은 점점 커져 가는지를.
오늘날 생존이라는 화두를 짐처럼 짊어지고 있는 후기 산업사회 구성원들에게 얀 벨츨의 이야기가 용기와 다양한 영감을 불러일으키길 바란다. 삶이 살아남느냐 배제되느냐의 게임이 되어 버렸을 때, 게임의 말이 되기를 거부하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고 선언할 길은 모두 사라진 것일까? 세상이 정해놓은 틀에 압도당하기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발명하고 창조하는, 진정한 발명가이자 창조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얀 벨츨은 적어도 그 가능성 하나를 증명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