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육아는 결과가 아닌 과정
며칠 전 한 지인이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 지인의 딸은 외국인들과 같이 사각모를 쓰고 있었다. 딸이 학교 다닐 때는 공부를 너무 안 해 아무리 시키려고 해도 안 됐는데, 두 아이의 엄마가 된 40의 나이에 캐나다에서 간호학으로 학위를 받았다고 했다. 그런 딸이 자랑스러워 알리고 싶어 보냈단다. 그런데 그 딸은 공부가 재미있어 더 하고 싶다며 미국으로 갈 계획이라고 한다.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는 초등 2학년 때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고 해 화제가 되었다. 그런 그가 중학교 3학년에 수학이 재미있어 과학고에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는 말을 들었단다. 대부분 초등학교 4~5학년, 늦어도 중학교 1학년 때 쯤에는 준비하기 때문이다. 수학을 좋아했지만, 대학교에서 F 학점을 여러 번 받을 정도로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4학년 때,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의 강연을 듣고 대학원에서 수학을 전공했단다. “악보만 보던 사람이 처음으로 음악을 들은 기분이었다.” 헤이스케 교수의 강연을 듣고 난 후의 벅찬 감정을 허준이 교수는 이렇게 표현했다.
허준이 교수 이야기는 우리나라 교육의 민낯이다. 선행학습과 문제 풀이 중심의 평가 방식이 그것이다. 악보를 보며 연주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 노래는 어떤 화음을 사용했고 어떤 장조인지를 맞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지인의 딸은 공부를 싫어했다. 하지만 흥미를 느끼자 새벽 4시에 일어나 공부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이 되었다. 악보가 음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 아이가 지금 당장 잘해주길 바라고 더 좋은 학교에 가서 더 나은 직장을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다. 그런데 따라주지 않거나 결과가 좋지 않으면 맘이 편치 않다. 하지만 앞에서 든 예처럼 정말 공부할 사람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언젠가는 하게 된다. 지금은 언젠가 하고 싶은 그 마음, 즉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기본만 잡아주면 된다. 기본만 있으면 그때가 어느 때이든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는 언제든 할 수 있다.
대학교 3학년 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친구도 여럿 있는 새마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후로 학원에서, 집에서, 학습지 관리 교사로, 학원장으로, 일선 고등학교의 집단 진로 상담사로 학생들을 만난 지가 30여년이다. 학생들과 같이하는 시간이 좋아 요즘엔 온라인으로 독서지도를 하고 있다. 네 딸의 엄마로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고 싶어 아이 잘 키웠다는 분들을 찾아다니며 조언도 많이 구했다. 가까운 곳에 그런 분이 있다고 해서 출산한 지 한 달도 안 된 퉁퉁 부은 몸으로 달려가 조언을 구한 적도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때의 경험들을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다.
1장에서는 일반적인 부모들의 사교육과 관련된 어려움을 알아보았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기다려주는 부모가 되었으면 하는 맘도 같이 실었다. 2장부터 4장까지는 아이들을 키웠던 경험 중 사교육비를 들이지 않고도 자기 주도성을 잡아주었던 내용으로 채웠다. 특히 아이들이 꿈을 갖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해줬던 부분과 공부 습관을 잡기 위해 운동과 명상, 스스로 계획 짜기, 계획에 맞게 실행했던 방법 등을 실었다. 5장에서는 어려운 상황도 극복하려고 마음먹으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했다.
이쯤에서 책 제목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본문 중에도 언급되지만 둘째와 넷째는 과학고 준비하는 학원에 2년 정도 다녔다. 영현이는 공부를 좀 더 했으면 하는데도 스스로 잠깐 공부해도 학교 성적을 유지하는데 무리가 없어 집에 돌아오면 늘 노는 것처럼 보였다. 저러다 공부에 대한 흥미조차 잃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늘 3개 학년 위인 언니와 영어도 같이하고 책도 거의 비슷하게 읽어서 인듯했다. 그래서 수준이 비슷한 아이들이 있는 곳을 찾아봐야 했다. 학원의 특목고 반에 한 달만 다녀보기로 했다. 집에서 3~40분 거리의 학원이라 처음에는 싫어했다. 하지만 그 곳 아이들과 배우더니 생기가 넘쳤다. 진로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이진이는 고등학생인 작은언니나 대학생인 큰언니가 읽는 책을 읽기 좋아했다. 집에서 혼자 놀 때도 그냥 책만 보는 게 아니라 실험이나 뭔가 만들어 볼 것이 있으면 더 재미있어 했다. 초등학교에서 영재교실, 중학교에서 영재원에 다니며 자연스럽게 과학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이가 관심 있어 하는데 그냥 모르는 체하기 쉽지 않았다. 과학고 준비하는 학원에 본인이 다니고 싶어 해, 작은 언니가 처음 시작했던 때인 중1 여름방학에 시작했다. 또 세연이와 영현이가 영어 기초를 잡을 동안 동네 공부방도 다녔고, 가끔 아이들이 꼭 필요하다고 할 때는 잠시 사교육의 힘을 빌기도 했다.
‘사교육 없이도 잘만 큽니다’는 상징적인 의미다. 어릴 적 스스로 하는 힘을 기르게 되면 공부뿐만 아니라 처한 상황에서 적극적인 아이들이 되더라는 내용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서 제목으로 잡았다.
어느 누구든 항상 성공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실패에서 좌절하며 머물러 버리면 그건 실패지만 그 실패에서 배울 점을 찾았다면 경험이 된다는 이은대 작가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네 명의 아이들이 어찌 제대로 된 길만 갔겠는가? 세연이는 전교생 중 유일하게 의대 약대를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며 여러 의대와 약대의 수시 원서를 들고 서울시내 대학교를 꽤나 많이 투어했다. 하지만 본인이 원하던 대학이 아닌 학교에 수시 합격해, 다녔다.(그때는 수시 원서 제한이 없어서 넣고 싶은 만큼 넣던 때였다.) 과학고 준비학원에서 얘가 떨어지면 우리 학원에서 과고에 갈 수 있는 학생이 없다고 말씀해주셨는데, 40명이 지원했던 과학고 시험에서 당일 컨디션 조절이 안 돼 고배를 마셨던 영현이. 예체능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가 많아 예체능을 시켜주지 못해 일반 대학으로 진학했던 하정이. 1년 선배들 같았으면 고2 성적만으로도 충분히 카이스트에 합격할 수 있는 아이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3학년을 마쳤어도 설카포(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에 가지 못해 속상해 했던 이진이. 하지만 모두들 자신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이 견뎌내며 금융 공기업에서, 삼성연구원으로, 공군 관제 일을 하며, 서울대 대학원에서 자신의 꿈을 향해 가고 있다. 실패에서 얻은 경험을 통해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이리라.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지인의 딸이나 허준이 교수도 실패를 통해 이룬 결과였을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도 언젠가는 실패와 맞딱뜨릴 수밖에 없다. 그때에 주저앉지 않고 스스로 제대로 설 수 있는 힘을 가진 아이로 키우고 싶은 마음은 모든 부모의 바람 일 것이다. 엄마가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도 주도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학원을 할 때, 육아에 대해 상담하러 오는 엄마들마다 서로 다른 고민으로 물어올 때가 많았다. 각기 다른 예를 얘기해주면서 가끔은, 전에 물어왔던 엄마한테 대답 못 해줬던 부분이 있었는데 이 사례를 얘기해줄 걸 하며 나중에야 떠올라 안타까웠던 적도 있었다. 먼저 걸어가 본 육아 맘의 사례가 지금 육아의 길을 걷고 있는 육아 맘, 육아 대디에게 참고할 만한 친구의 사례처럼 느껴졌으면 하는 맘으로 집필을 결심했다. 육아는 결과가 아닌 과정의 연속이기에 과정에서 옆에 두고 참고할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맘이다. 정답은 아니지만 이런 방법도 있다는 사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2022년 10월 가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