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시는
두렵고, 또 미안한 일입니다.
누가 보기나 한데?
괜히 여러 사람 민폐 끼치는 것은 아닌지
책을 내지 말까?
잠시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좀 예쁜 시어들이 있어
캘리그라피에 인용될 문장도 아니고
읽다 보면 괜히 부담되고
읽다 보면 사는 것이 그렇지 뭐,
잊어버리고 싶은 일상과
감추고 싶은 부끄러움뿐인데.
그런 것들을 시라고 쓰고 있으니
누가 읽고 싶겠어.
괜히 아내에게 미안하고
출판사에 미안하고
안면 봐서 시집 한 권 사야 하는 지인들에게 미안한
그런 시시콜콜한 일상들.
그런 시어빠진 김치 같은 민주주의.
사람 사는 것이, 뭐 다 그렇지, 별수 없는 것을
그런 것을 책으로까지 내야 하겠어?
내가 쓴 시는,
나를 위축되게 만드는 그런 시다.
첫 시집을 세상에 내놓은 지 15년이 흘렀다.
아득하다.
두 번의 노조위원장과 두 번의 구속, 이제 마을 목수로 또 다른 삶을 살아간다.
사는 일이 바빠서 시를 쓰지 못했고, 싸우느라 시를 쓰지 못했다.
그렇지만 시를 놓을 수 없었다.
지금의 나에게 시는 동네 시인으로 살아가면서 문간을 고치듯 이웃의 삶을 보듬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시집을 내놓으면서 나를 정리하고 싶었다.
아내가 아파한다는 시를 감옥에 온 노동조합 활동가들에게 보여주었을 때 모두 자신의 삶이라고 이야기했다.
내 시는 수많은 동지들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