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도 그리고 여행도 다녀 좋겠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생각해 보면, 그림이 좋아 밤을 새던 날도 있었고, 여행이 좋아 홀연 땅끝까지 달려갔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마감 전날 종이를 펴놓고 졸다가 형이상학적인 선을 긋거나 먼 곳까지 가서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애쓰는 나 자신을 보면, 그림도 여행도 일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서글퍼진다. 그래도 어느 새벽, 가방 하나에 스케치북 담고 텅 빈 고속도로에서 차를 달리면 왠지 모르게 설레 가슴이 뭉클하다. 그래, 길 위에서 펜을 부여잡은 채 스케치북에 머리를 파묻고 쓰러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