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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서두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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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우리는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

책머리에 10년 같은 3년 “교문을 들어선 것이 엊그제 같은데…”라는 말로 학창 시절, 졸업생은 답사를 시작하곤 합니다. 유수같이 흘러가 버린 3년간의 학창 생활에 대한 아쉬움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겠지요. 저 또한 한국전기초자에 부임해 경영 혁신이라는 성과를 이루어 내기까지 3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흡사 10년의 시간을 겪은 듯 그때의 일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흘러간 시간의 길이에 대해 이러한 ‘착각 증세’를 느끼는 사람이 저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옛날 생산 현장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을 만나도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3년이란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지만 사장님과 함께한 시간을 회상하면 10년처럼 길게 느껴집니다.”라고요. 저는 우리 1,600여 사원들이 함께했던 3년이 왜 10년이나 20년쯤으로 여겨지는지 그 연유를 알고 있습니다. 실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격변의 시간이었습니다. 텔레비전 브라운관 유리와 컴퓨터 모니터용 유리를 생산해 오던 한국전기초자는 1997년에 무려 77일간의 장기 파업 사태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1997년 말, 회사는 한국유리 계열에서 대우그룹 계열로 바뀌었습니다. 때마침 불어닥친 IMF 한파로 1998년에는 부도 직전의 위기를 맞았고, 이어서 구조조정 대상으로 지목되어 어디로 내몰릴지 모르는 상황을 맞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99년에는 일본의 아사히글라스가 지배주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3년이 10년 같다”고 느끼는 것은 그런 우여곡절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기간에 우리가 만들어낸 ‘변화’ 때문입니다. 1997년 12월의 어느 새벽, 저는 대우그룹으로부터 한국전기초자의 경영을 책임지라는 지시를 받고 가방 하나만 달랑 든 채 구미로 내려왔습니다. 그 새벽에 처음 접했던 공장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붉은 스프레이로 사방에 휘갈겨 놓은 살벌한 구호들, 팔지 못해 지천으로 쌓아둔 재고품들, 어지럽고 침침한 작업장, 무질서한 사원들과 무기력해진 간부들, 게다가 목전으로 죄어드는 부도 위기…. 더구나 회사는 이미 미국의 기업진단기관으로부터 ‘생존 불가능cannot survive’이란 딱지까지 받아 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바꾸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전방위적이고 동시다발적인 혁신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전기초자 가족들이 글자 그대로 ‘살갗을 벗기는 고통’을 감내하며 동참했던 혁신 운동에 대한 기록입니다. 3년 동안의 혁신이 가져온 변화를 일일이 열거할 수 없으나 1997년 이전의 상황과 몇 대목만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997년 말에 1,114%에 달하던 부채 비율은 2000년 말 37%로 낮아졌고, 3,480억 원에 이르던 차입금은 2000년 말 무차입 경영으로 바뀌었습니다. 1997년에 600억 원의 적자를 본 회사는 2000년에 1,717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습니다. 특히 2000년에 한 투자기관에서 700여 상장사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한국전기초자는 영업 이익률에서 35.35%로 1위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1,000원어치 물건을 팔면 353원이 영업 이익이 되었다는 계산이지요. 또 한국전기초자는 차세대 제품인 초박막액정유리TFT-LCD GLASS 사업을 위해 1,800억 원의 내부 투자자금도 확보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부도 위기의 퇴출대상 기업에서 3년 만에 초우량 기업으로 변신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전기초자 사람들이 3년이 10년 같았다고 한 것은 3년간의 회사 형편과 사정이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변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순전히 금전적으로만 단순 비교한다면, 혁신 운동의 1기로 삼았던 1998년 이후 3년 동안 벌어들인 돈과 납부한 세금이, 한국전기초자가 그 이전에 23년간 벌었던 돈을 웃도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국 우리는 3년을 10년으로 살았던 셈이지요. 저는 부임 초기 사원들과의 대화에서 ‘소가 밟아도 무너지지 않는 회사’를 만들자고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나 그들에게 약속했던 우답불파牛踏不破의 견고한 회사를 만들어냈습니다. 영업 이익을 많이 내고 재무 구조가 건실해졌다고 해서 튼튼한 회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3년간의 혁신에서 저는 외형적 성장에 앞서 사원들의 ‘의식 구조의 혁신’을 가장 중요한 성과로 꼽습니다. 77일간에 걸친 장기 파업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던 1997년 말, 노조 측에서는 새로 부임한 저를 내려다보며(저는 키가 큰 편이 아닙니다) “고용을 보장한다는 각서에 서명하라”고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저는 그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용 보장은 사장이 하는 게 아니라 고객이 하는 것이다.” 선문답처럼 들렸을지 모르나 그것은 제가 일관되게 유지해 온 경영철학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좋은 물건을 만들면 고객이 사원들 고용도 보장하고 월급도 많이 줄 것 아니겠습니까. 쉽게 말해서 제가 추진했던 경영 혁신의 목표점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원들이 “고용을 보장해 줄 사람도, 내게 월급을 줄 사람도 결국 고객이다”라고 확고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객으로부터 고용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좋은 물건을 값싸게, 그리고 열심히 만들어 내놓아야 합니다. 모든 사원들이 그런 의식으로 무장된 회사라면 그 회사는 소가 아니라 코끼리가 밟아도 깨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혁신에 돌입하면서 생산 설비, 기술, 재무, 영업 등 전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 걸어 나가지 않는 한 단 한 명의 사원도 퇴사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원들에 대한 의식 개혁에 돌입했습니다. 3년이 지나 한국전기초자의 사원 모두는 당연히 “고객이 내 고용을 보장하며 나는 고객으로부터 월급을 받고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철저히 열린 경영을 실천했습니다. 그 결과 사장이 알고 있는 회사의 모든 경영 정보를 생산 현장의 사원들도 자유롭게 접하면서, 스스로를 회사 경영의 주체라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분야의 혁신보다 힘겨웠기 때문에, 저는 사원들의 의식 혁신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부임하자마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강행군으로 가졌던 사원과의 대화 시간에, 저는 회사의 어려운 실정을 숨김없이 털어 놓고 혁신의 고통을 함께 이겨 가자고 호소했습니다. 혹자는 그것을, 회사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사원들의 희생을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적인 경영수법이라고 했습니다. 훗날 흑자로 돌아서면 모든 경영 정보가 다시 캐비닛 속에 들어갈 것 아니냐며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사원들에 대한 정보화 교육 등으로 오히려 더욱 다양한 채널로, 더욱 상세한 경영 정보가 철저하게 공개되었습니다. ‘열린 경영Open Book Management’은 경영의 전략이 아니라, 모든 사원들을 경영의 주체로 대접하는 경영의 정도正道입니다. 제가 지향했던 열린 경영이란 단순한 경영 정보의 공개가 아니라 노와 사, 혹은 경영책임자와 사원들 간에 터놓고 주고받는 ‘정분情分의 교류’입니다. 이 따뜻한 마음의 교류로 인한 상호 신뢰가 없었다면 사원들의 의지를 한 방향으로 결집해내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노와 사, 경영책임자와 말단 사원, 각 부서의 책임자와 부서원 사이를 따뜻한 정으로 이어 주고 그런 관계를 바탕으로 새로운 목표에 신명나게 도전해 가는 것! 이것은 서양학자들의 경영 혁신 이론으로는 단순 적용이 곤란한 우리 한국전기초자만의 독창적인 문화였다고 자부합니다. 이 책은 한국전기초자의 3년간의 혁신 운동 과정을 담은 현장 보고서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지금 그때의 한국전기초자는 사라지고 없다는 것입니다. 1999년 한국전기초자를 인수한 일본 기업 아사히글라스는 한국전기초자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전기초자가 세계적으로 뻗어나가 자국 내에 있는 또 다른 유리회사의 시장을 잠식해 나가는 것을 가만 보고 있을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생산량과 신기술 개발을 제한했습니다. 그러다 2011년 CRT GLASS(TV 브라운관 유리) 사업을 접으면서 상장폐지 됐습니다. 지금은 한국전기초자라는 회사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1,600 초짜맨들과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가꾸었던 일터가 사라지고 없다는 생각을 하면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저는 가끔 강연에서 “외자에도 품질이 있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아무리 최대 주주라고 해도 경영자에게 회사를 맡겼으면 그 실적을 놓고 책임을 물어야지, 성장하고 있는 회사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외자를 평가할 때 투자 마인드가 없는 기업이 주는 돈이라면 아무리 아쉬워도 받으면 안 될 것입니다. 지금 한국전기초자는 없지만 그때 함께했던 1,600 초짜맨들의 가슴속에는 10년 같은 3년의 역사가 생생하게 살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에 있든 함께 땀 흘렸던 기억은 크던 작던 여러 산업현장에서 또 다른 혁신을 낳고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저는 무엇보다, 전도前途가 불확실했던 그 어려운 시기에 저를 믿고 기꺼이 모진 고통을 감내하면서 따라 준 한국전기초자의 가족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이 책이 ‘굴뚝산업’이라는 이름으로 구시대 산업인 양 오해되고 있는 전통 제조업 종사자들에게도 격려와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2017년 6월 서 두 칠(dcsuh@naver.com)

우리는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

이 책은 우리 회사의 3년간의 혁신 운동 과정을 담은 현장 보고서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전도(前途)가 불확실했던 그 어려운 시기에 저를 믿고 기꺼이 모진 고통을 감내하면서 따라 준 한국전기초자의 가족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와 함께 책의 출간을 자축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이 책이 '굴뚝산업'이라는 이름으로 구시대 산업인 양 오해되고 있는 전통 제조업 종사자들에게 격려와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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