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로스앤젤레스 출생, 버뱅크에서 성장. 어린 시절 매우 내적인 성격이었던 그의 가장 큰 즐거움은 TV에서 재방영되는 공포영화와 B급 SF영화를 보는 일이었다. 자신의 영원한 우상 빈센트 프라이스를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이러한 어린시절의 그의 영화들은 이후 그의 작품세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팀 버튼은 소년 시절에 쓰레기 버리기 금지 포스터로 상을 받고 나서부터 애니메이터가 되기로 결심했다. 고등학교 졸업후 디즈니에 애니메이터로 들어간 그는 <토드와 코퍼> <타란의 대모험> 등의 작업에 참가했다. 디즈니 장학생으로 디즈니 영화사가 설립한 캘리포니아 예술학교(칼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2년간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디즈니 스튜디오에 입사한 그는 <여우와 사냥개>, <컨트롤> 등의 작업에 참가했다.
그의 감독 데뷔작은 23세 때 괴기영화 스타 빈센트 프라이스가 되고 싶다는 소년의 꿈을 그린 6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빈센트>로, 그의 어린 시절 우상인 빈센트 프라이스가 내레이션을 맡아주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시카고 영화제 등 전 세계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1984년에는 프랑켄슈타인 이야기와 동화적 상상력, 50년대 B급공포영화의 문법을 차용하여 죽은 애완견을 살리려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25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프랑켄위니>를 만든다. 이 작품에서 그는 기성세대에 의해 동화적 순수의 세계가 파괴되는 모습과 그것이 복원되는 모습을 그려내며, 그의 이후의 작품들의 방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를 끝으로 팀 버튼은 디즈니 프로를 떠난다. 그의 기괴한 상상력은 디즈니의 귀여운 상상력과 일치할 수 없었고 디즈니는 <프랑켄위니>의 전국배급을 거부했던 것이다.
TV 동화극장 <페어리 테일 씨어터>의 1편 <알라딘의 요술램프>와 <피위의 플레이하우스>로 명성을 쌓던 그는 1985년 코미디언 피위 허먼과 첫 극영화를 찍게 된다. 워너브러더스에서 제작한 팀 버튼의 첫 장편영화 <피위의 대모험> (1985)이다. 이 영화는 컬트스타였던 피위 허만의 이미지를 그대로 스크린에 확장시키면서, 팀 버튼의 영화적 스타일의 단초를 잡아준다. 이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워너브러더스는 팀 버튼에게 호러 작가 마이클 맥도웰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비틀쥬스> (1988)의 감독을 제안한다.
팀 버튼은 <비틀쥬스>에서 흑백 호러영화의 미장센과 표현주의 양식, 디즈니 가족극장의 패러디를 키치적으로 혼합하면서 자신만의 영화적 스타일을 완성한다. 괴기영화와 코미디를 합성한 듯한 이 영화는 1988년 박스오피스 9위를 차지하며 전미 히트를 했고 팀 버튼은 호평과 흥행의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뛰어난 색채감, 그리고 코믹한 대사들은 영화 매니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작품으로 빌 닐이 아카데미 메이컵 상을 수상했다.
워너는 연이어 <배트맨 Batman>(1989)의 영화화를 추천한다. 팀 버튼은 모두들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한 <배트맨>의 연출을 맡아 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 색채와 화면 구성의 놀라울 만한 재능을 선보였다. 5천만달러의 제작비를 투자한 <배트맨>은 팀 버튼 최초의 블록버스터가 되었고, 1989년 박스오피스 1위와 흥행 10위에 등극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지극히 암울하고, 기형적인 분위기를 가진 <배트맨>을 통해 팀 버튼은 할리우드 시스템과 기묘한 조화를 이루는 감독이 된다. <배트맨>으로 팀 버튼은 전국 극장주 연합회 (NATO)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다.
그는 1989년부터 독자적인 영화 작업을 위해 팀 버튼 프로덕션를 설립해 영화, TV 애니메이션 제작, 서적의 기획 개발로 사업 수완도 활발하게 발휘했다. 이 중, ABC-TV의 애니메이션 <비틀 쥬스>도 높은 시청률 기록했다.
1990년 팀 버튼은 자화상과도 같은 <프랑켄위니>의 세계로 돌아가 <가위손 Edward Scissor-hands>을 완성한다. <가위손>은 진실과 가짜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 포스트 모더니즘의 공간 속에서 예술가의 초상에 대한 진지한 고백이다. 더 나아가 1992년 <배트맨2 Bat-man Returns>는 팀 버튼 자신의 가장 은밀하고, 속깊은 고백이었다. 팀 버튼은 흥행 감독의 대열에 입지를 굳히고 고유한 팀 버튼 매니아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1993년에는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그린 동화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제작한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패러디이자 조롱인 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그는 디즈니에 대한 보복(?)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1994년에는 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평가되는 에드워드 우드 주니어의 이야기를 영화화한다. 흑백으로 찍은 <에드 우드>는 그의 우상에 대한, 그리고 그의 정신적인 자산이 되었던 50년대 B급 영화에 대한 경배였다. 그는 오손 웰스와 에드 우드 사이에 끼인, B급영화와 작가주의 사이의 화해할 수는 없지만 공존이 가능한 이상한 관계로 자신을 위치시켰다. <에드 우드>는 팀 버튼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팀 버튼다운 영화라는 찬사를 듣고 있는 영화다. 그리고 1996년에는 에드 우드를 따르기라도 한 것처럼 60년대 풍선껌 시리즈에서 출발하는 <화성침공 Mars Attacks!>을 내놓고 처음으로 흥행에서 쓴 맛을 보게 된다. 미국 사회에 대한 조롱으로 일관한 <화성침공>에서 팀 버튼은 모든 위선과 가식을 벗고 순수한 패러디 세계에서 자족한다.
1999년 11월 팀 버튼은 <슬리피 할로우 Sleepy Hollow>로 그가 언제나 할로윈 데이의 아이임을 다시한번 보여준다. <슬리피 할로우>는 200년 전 전설을 바탕으로 목 없는 유령 '립 반 윙클'의 이야기를 다룬 워싱턴 어빙의 고전 소설을 각색, 팀버튼의 원더랜드로 그려낸 작품이다. <슬리피 할로우>는 미국 아카데미 의상상, 촬영상, 미술상 세 개 부문 후보에 올라, 미술상을 수상했다. 2001년에는 지난 1968년에 만들어져 SF영화의 고전이 된 <혹성탈출>을 새롭게 리메이크 해 개봉함으로써 다시 세계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2003년 작 <빅 피쉬>는 팀 버튼만의 탁월한 색채와 화면 구성 그리고 상상력까지 총동원된 작품이다. 하체는 하나인데 상체는 둘인 쌍둥이 여가수와 거대한 몸집을 가진 거인이 기괴한 삽화로 등장하는가 하면, 사랑하는 여인에게 구애하기 위해서 수선화 1만송이를 바치는 남자의 순정이 더없이 낭만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2005년 팀 버튼은 로알드 달의 동화를 각색한 <찰리와 초콜렛 공장>을 조니 뎁, 프레디 하이모어 주연으로 연출하였다. 이 영화 역시 큰 호평을 받으며 흥행에도 성공을 거뒀다. 같은 해에 오랜만의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유령신부>를 감독, 제작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팀 버튼의 페르소나라 불리는 두 배우 - 조니 뎁과 헬레나 본햄 카터가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2007년에는 스티븐 손드하임의 히트 뮤지컬 <스위니 토드: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을 각색, 역시 그의 대표 배우 조니 뎁, 헬레나 본햄 카터 주연으로 영화화했다. 이 작품은 아카데미 미술상을 수상했고, 의상 디자인상과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