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사진작가로 활동하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데뷔한 스페인에서 가장 존경받는 국제적인 작가이다. 1932년 스페인의 우에스카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 겪었던 스페인 내전에 대한 끔찍한 경험은 그로 하여금 내전과 그것이 후대에 미친 영향을 영화화한 최초의 감독이 되게 했다.
1952년 마드리드의 영화 연구소에서 영화 연출을 배운 후 사우라는 < Cuenca >라는 다큐멘터리를 거쳐 <개구쟁이들>이라는 영화로 60년에 데뷔했다. 가난에 의한 범죄의 만연을 사실적으로 파헤친 이 작품은, 비전문적인 배우들을 기용하여 뒤떨어지고 억눌린 당시 스페인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었다.
<사냥>(65)에서 그는, 외딴 계곡에서 하루의 사냥 동안에 서로 분열하고 마는 전 프랑코군 병사 3명의 인물 성격을 통해서, 아직도 내전 체험의 악몽이 남아있는 스페인의 도덕적 분열상을 뛰어난 촬영과 함께 파헤쳤다. 이 작품으로 그는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고, 제작자 엘리아스 쿠에레헤타, 촬영기사 루이스 쿠아드라도, 편집자 파블로 G.델 아모를 만나 그후로도 오랫동안 이른바 '사우라 사단'을 이루며 함께 작업하였다.
정치적, 도덕적, 종교적 억압이 일으키는 위선과 폭력, 그리고 성적인 문제들은 항상 그의 주된 작품 소재였다. <얼음에 얼린 박하(Peppermint Frappe)>(67)에서는, 꿈에 그리던 여인에게 거절을 당한 의사가 주술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조수를 그녀의 대용으로 바꾼 후에 그녀를 죽여버리려고 한다. 이 작품은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았다. <기쁨의 정원(El Jardin de las Delicias / The Garden Of Delights)>(70)에서는, 전 프랑코주의자인 어느 사업가(교통사고로 벙어리가 되었다)의 가족들이, 스위스 은행 구좌 번호를 기억해내도록 하기 위해서 그의 일상생활들을 재현해 낸다.
<안나와 늑대들(Ana Y Los Lobos / Anna And The Wolves)>(73)에서는, 영국인 여자 가정교사가 어머니가 지배하는 어느 집안에서 세 아들의 희생물이 된다. 그 젊은이들은각각 군사적 탄압, 성적 폭력, 그리고 교회를 상징한다. 73년의 <사촌 안젤리카(La Prima Angelica)>도 그 특유의 사실과 환상이 교차되는 블랙 유모어로 칸느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사우라의 인물들은 과거의 그림자에 깊히 얽매어 있으며,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을 결합시켜 좋은 조화를 보여준다. 이 시절 가장 인상적인 작품인 <까마귀 기르기(Cria! / Cria Cuervos)>(75)에서는, 8살짜리 주인공 소녀가 자기의 어머니와 부정한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믿기를 거부한다. 이 영화는 어린 시절의 정신적 방황에 대한 예리한 탐구일뿐만 아니라, 과거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인상적인 의미를 담고있다. 이 영화는 칸느 영화제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이 시기에 스페인의 영화가 국제적인 성과를 올린 것은, 오직 사우라의 작품들 밖에 없었다. 이때 그는 찰스 채플린의 딸인 제랄딘 채플린(Geraldine Chaplin)을 만나 아들을 하나 두었고, 그의 당시 작품들에는 그녀가 대부분 출연을 하였다.
1975년 프랑코 사후에, 사우라는 사회적 정치적 문제의식을 담은 영화들로부터 더 개인적인 영감에 의한 예술영화들로 전환을 한다. <엘리자, 내 사랑(Elisa, Vida Mia / Elisa, My Life)>(77)에서는, 아버지를 찾아가는 딸이 자신의 눈으로 보는 추억들을 이야기한다. <가려진 눈(Los Ojos Vendados / Blindfolded Eyes)>(78)에서는, 테러와 고문을 다루었다. 프랑코 치하의 엄격한 표현의 제한이 없어졌으므로, 그는 이전에 금기시되던 소재들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작가 정신을 더욱 더 선명하게 드러내었다. <질주(Deprisa, Deprisa / Fast, Fast)>(80)에서는, 궁지에 몰린 범죄자 4명의 허무주의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행동을 보여주었다. 프랑코 치하에서의 검열제도가 없어지자, 사우라는 당시 스페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는 <질주>는 해설에 의한 직선적인 전개, 감상적 요소를 배제한 자연스러운 연기, 현대의 도시 생활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묘사로 주목을 끌었다. 이 작품은 마침내 베를린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인 금곰상을 수상했다. 같은 시기의 <엄마의 100번째 생일(Mama Cumple Cien Anos / Mama Turns 100)>(79)은 생일 파티에 온 손님들 모습이 새로운 스페인의 변화를 상징하는 코메디로서, 그의 은유적 표현기법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다.
사우라의 80년대 활동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플라멩코 댄서이자 안무가인 안토니오 가데스(Antonio Gades)와 함께 만든 무용극 <피의 결혼식(Bodas De Sangre / Blood Wedding)>(81)이다. 이것은 로르카(Lorca)의 무대극을 기초로 한 것으로서, 전통예술에 대한 찬미이다(이것은 리허설을 촬영하는 방식으로 되어있으며 그 촬영이 매우 뛰어나다). 오페라 <카르멘>의 플라멩코 버젼인 <카르멘(Carmen)>(83)은 무대와 실생활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마법사를 사랑하라(El Amor Brujo / A Love Bewitched)>(86)는 팔랴(De Falla)의 음악을 기초로 한 것으로, 사실적이기는 했으나 작위적 색채가 약간 흠이었다. 이 3작품은 스페인의 전통 예술, 특히 민속춤을 뛰어난 영화적 기법으로 화면상에 역동적으로 그려낸 역작으로 꼽히고 있다. 88년에는 3편이 함께 몬트리올 영화제에 상영되어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그 사이에도 그는 자살과 영혼의 문제를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그려낸 <달콤한 시간(Sweet Hours / Dulces Horas)>(82), <안토니에타(Antonieta)>(82), <막대기들(Los Zancos / The Stilts)>(84)를 계속 만들었다. 국제적 명성을 얻은 그는, 정복자 로페 데 아귀레가 남미에서 전설의 땅 엘도라도를 찾는 과정을 그린 사극 <엘도라도(El Dorado)>를 대작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평가는 별로 좋지 못하였다.
90년에는 그가 자신의 영화 인생을 결산한다고 할 수 있는 <아 카르멜라(Ay, Carmela!)>를 발표해 그의 명성을 재확인했다. 그가 추구해 온 두가지 소재, 즉 역사적, 정치적 혼란기에 일반 시민들이 겪는 고통과 갈등의 문제와 스페인 고유의 민족정서를 영화화면에 투영시키는 두가지 관점을 적절히 융화시킨 이 작품은 국제적인 격찬을 받으며 주연여배우 카르멘 마우라(Carmen Maura)에게 유럽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사우라가 그의 예리했던 정치적 의식을 이제는 잃은 것 같이 보이기는 하나, 그는 스페인의 역사적 굴곡과 무관한 영화를 만든 적은 없다. 내전과 프랑코의 독재는 국민들과 그 마음속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또한, 연기와 영상을 창조해내는 그의 뛰어난 기량으로, 유럽의 선도적인 감독들 중의 한사람으로 남아있다. 루이즈 브뉴엘 감독(스페인 출신으로 전위적 영상의 대가)의 추종자인 사우라는 루이스 베를랑가, 빅토르 에리세, 하이메 샤바리 같은 스페인 감독들과 비교가 된다. 뒤의 두 명은 사우라와 같이 제작자 엘리아스 쿠에레헤타와 함께 일하고 있다. 사우라의 영화들 중 많은 작품들이 그의 오랜 친구이자 여배우인 제랄딘 채플린과 공동 작업으로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