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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박경리

본명:박금이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26년, 대한민국 경상남도 통영 (사수자리)

사망:2008년

직업:소설가

가족:남편 김행도, 외동딸 김영주, 사위 시인 김지하

기타:1946년 진주여고를 졸업했고, 1994년 이화여자대학교 문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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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녹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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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사에 길이 남을 걸작 <토지>의 작가. <토지>가 없는 한국 문학사를 상상해 보면, 박경리란 인물이 우리 문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박경리의 어린 시절은 각박했다. 열네 살에 네 살 연상의 여자와 결혼해, 열 여덟에 박경리를 낳은 아버지는 박경리가 태어나자 마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그런 아버지를 박경리가 좋아했을 리 없고, 어머니와의 사이도 좋지 않았다.

진주여고를 다닐 때는 학비를 보내주기로 했던 아버지가 학비 부담을 어머니에게 미루자, 아버지를 찾아가 따지다 맞은 일도 있다. '여자가 공불하면 뭣하나. 시집가면 그만이지' 하는 말에, '당신이 공부시켰어요? 그만두라 마라 할 수 있습니까?'라고 서슴없이 '당신'이라 부르며 대들자, 아버지가 솥뚜껑 같은 손으로 박경리의 뺨을 때렸다고 한다.

문학은 그 시절 박경리에게 유일한 즐거움이자 희망이었다. 책을 미칠 정도로 좋아해 누가 책방에 돌려주는 책이 있으면 싹싹 빌어서라도 책을 손에 넣고선 밤새 읽고 돌려주곤 했다. 하룻 밤새 책 세 권을 읽고 새벽녘에 새빨개진 눈을 껌뻑거리던 기억도 생생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인천 전매국에 근무하던 남편과 만나 결혼해 어두웠던 가정사의 그늘에서 벗어나는가 했으나, 그 남편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투옥되고, 6.25 때 월북하면서 다시 홀로 되고 말았다.

「평화신문」과 「서울신문」의 문화부 기자를 거치며, 기자가 부족해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던 그는 일년 뒤 힘들다는 이유로 신문사를 그만두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69년 <토지>를 집필하면서 그는 일년간 세상과 철저히 담을 쌓고 살았다. 원래 <토지>는 지금처럼 방대한 분량의 대하소설로 계획되었던 것이 아니다. 외할머니에게서 들은 얘기를 토대로 한 권 분량으로 써서 탈고까지 마친 후에야 세상에 공개하기로 작정했던 작품이었다. 독하게 마음 먹고서 전화도 끊고 신문도 끊고 원고 청탁도 일체 받지 않은 채 원고지를 채워 나가던 그는, 그러나 어머니와 딸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으로서 가난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했다.

한 차례의 절필을 포함한 우여곡적 끝에 1994년에야 끝난 이 대장정은 원주시 단구동 옛 집에서 완성되었다. 1997년 이 지역이 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토지>의 산실이 헐릴 위기에 처하자, 문화계 및 지역인사들이 나서고 토지개발공사가 협조하여 3천평 짜리 '토지문학공원'으로 영구보존 되었다.

여기에는 박경리가 <토지>를 써낸 커다란 앉은뱅이 책상이며, 글이 막힐 때면 건너가 괜히 뒤척거리던 '고추말리는 방', 기자가 오면 '빠꼼히' 내다보고 내쫓곤 하던 현관 바로 옆으로 난 창문 등 모든 공간과 가구가 쓰던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외에도 그가 살던 집을 중심으로 <토지>의 작품무대인 경남 하동의 평사리 마당, 홍이동산, 섬진강, 그리고 용두레벌(용정)이 작품 속 분위기 그대로 복원되어, '토지문학공원'을 구성하고 있다.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자신의 존엄을 침해받으면 견디지 못한다는 박경리는 이런 점에서 <토지>의 등장인물 중 최치수를 자신의 분신으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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