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시기의 목회자, 신학자, 농민군 지도자이다. 초기에 루터의 개혁 노선을 지지했으나 권력의 비호를 받는 루터와 길을 달리했다. “유무상통”(Omnia sunt communia)으로 대변되는 초기 기독교의 나눔 공동체 정신, 교부 사상, 피오레의 요아킴과 요한네스 타울러의 중세 신비주의 등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신학은 매우 실천적이었으며, 성서의 문자에 갇히지 않은 성령의 역사를 추구했다. 나아가 이러한 신학은 지주 및 통치자의 지배에 저항하고, 권력과 공생 관계인 종교의 특권을 맹비난하는 사회정치의식으로 표출된다. 1525년 독일 농민 전쟁에 가담했고, 결국 반란의 수괴(首魁)로 몰려 처형됐다. 뮌처의 투쟁은 훗날 사회주의, 아나키즘, 해방신학 등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