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 기독교 신학의 기초를 세운 세 명의 갑바도기아 교부 중 한 사람으로, 사도요한에 이어 ‘신학자’라는 칭호를 받은 인물이다. 그는 동방과 서방 교회 모두에서 존경받아 서방에서는 그를 동방 교회를 대표하는 4명의 박사 중 한 명으로 칭했다.
튀르키예의 갑바도기아 나지안주스에서 태어난 그는 가이사리아, 알렉산드리아, 아테네 등지에서 수학하며 대 바실리우스와 우정을 쌓았다. 그는 고독과 관상을 중시하여 수도사의 삶을 추구했으나 아버지와 바실리우스의 권유로 361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379년 니케아 정통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로 소환되어 대주교로 임명되었고, 아리우스주의에 맞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 교리를 변호하며 381년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니케아 신조를 확인하고 성령의 신성을 규정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수도사로 생애를 마쳤다. 그의 저서 『삼위일체에 대한 다섯 개의 신학적 연설』은 삼위일체 신학의 정수를 담고 있으며 그의 사상은 동서방 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