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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1906년 2월 4일, 독일 브레슬라우의 유복하고 전통 있는 가문에서 팔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17세의 나이에 튀빙겐 대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하여, 21세의 나이에 베를린 대학교에서 박사학위(1927)를 받고 24세의 나이에 대학교수 자격(1930)을 취득했다. 1931년 8월부터 베를린 대학교 신학부 강사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11월에는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33년 9월, 교회에 대한 나치 정권의 간섭이 심해지자 이에 대항하는 고백교회 운동에 참여했다. 1935년 4월, 칭스트(발트해)에서 고백교회 신학원을 시작하고 두 달 후 핑켄발데로 이전했다. 1936년 2월, 베를린 대학교 신학부에서 “나를 따르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강의를 하고 그 후 제국교육부 법령에 따라 대학교수 자격을 박탈당했다. 1937년 9월, 게슈타포에 의해 핑켄발데 신학원이 폐쇄되자 장소를 옮겨 가며 1940년까지 목회자 양성 교육을 계속했다. 1939년 6월 2일, 미국 유니온 신학교의 초청을 받아 도미했으나, 얼마 후 귀국을 결심하고 7월 27일 베를린으로 돌아와 나치 정권 전복 모의에 가담했다. 1940년 9월, 그의 행동이 국민을 분열시킨다는 이유로 모든 공적 발언과 저술 활동의 금지 조치를 당했다. 1943년 4월 5일, 게슈타포의 가택수색으로 체포되었다. 1945년 4월 8일, 몇 차례의 이감을 거쳐 도착한 플로센뷔르크에서 야간 즉결재판을 받고 이튿날 새벽 교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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