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단편집 『오늘처럼 고요히』 이후, 6년간 발표한 단편들 중에서 『잃어버린 이름에게』에 실은 작품들과 「갑사에서 울다」라는 단편을 제외한 열 편을 추렸다.
열 편의 소설을 모으는 동안 글을 못 쓰던 시절이 있었다. 아프기도 했다. 이제껏 믿었던 세계에 대해 의심을 품었고, 그동안 써온 내 소설을 부정하는 일도 겪었다. 생각해보면 소설가라면 한 번쯤 겪어야 하는 마땅한 통과의례였다. 그 고비를 넘기면서 지어온 소설들이니 각별하나,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의혹 없이 내 소설을 읽어와준 손정혜와 윤규미, 허물 많은 소설을 보듬어준 김미정 선생님, 세번째 단편집으로 묶일 수 있도록 애써준 문학과지성사와 이주이 편집자, 무엇보다도 김이설의 소설을 기다려준 독자분들에게 가장 큰 감사를 드린다. 기다리는 글을 쓰는 일. 살게 하는 힘이 되었다.
정말 쓰고 싶은 소설이야말로 어느 누구도 울지 않는 밤에 관한 이야기. 그런 소설을 내놓을 때까지, 써보겠다. 여하튼 쓰겠다.
2023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