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배 선생님은 독립 투쟁을 하시지는 않았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독립을 치열하게 준비하신 분이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된 것처럼 확신하셨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하나하나 준비해오실 수가 있었을까?
선생님의 그 확신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었을까?
36년의 세월은 우리글의 공백기였다.
해방된다는 확신만 있다면 차라리 그 공백기는 글을 정리하고
통일시키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확신을 누가 할 수 있었을까.
만약 조선어학회가 없었다면, 최현배 선생님이 없었다면
갑작스럽게 해방을 맞은 우리는 어떤 글을 교과서에서 배우게 되었을까?
한글 사용을 주장하는 사람들끼리도 통일이 안 되어 우왕좌왕했을 것이고
그 틈에 한자나 일본어가 교과서에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 한다.
해방과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우리말 선생님을 양성하고, 사전을 편찬하고,
교육에 필요한 교재를 만들고, 교과서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를 원칙으로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조선어학회와 최현배 선생님의 부단한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자각하지 못하였지만 우리는 모두 최현배 선생님의 제자다.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확신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신 큰 선생님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