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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데쥬다 야코블레브나 만델슈탐(Nadezhda Yakovlevna Mandelstam)러시아 사라토프의 유대계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는 부모와 함께 독일.프랑스.스위스 등을 오가며 지냈고, 키예프에 있는 사립중학교를 졸업한 후 당시 키예프의 대표적 아방가르드 화가였던 A. 엑스테르의 스튜디오에서 회화를 공부한다. 1919년 시인 오십 만델슈탐을 만난 뒤 1938년 5월 1일 그가 마지막으로 체포될 때까지 함께 산다. 20세기 초 러시아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였던 오십 만델슈탐은 1934년 스탈린을 풍자한 시로 체포당해 보로네슈에서 아내와 함께 3년간의 유형을 마치고 모스크바로 돌아왔지만, 1938년 다시 체포당해 블라디보스토크 부근의 임시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나제쥬다는 남편의 사후 체포를 피해 계속 거처를 옮겨 다니면서 공장 노동자?학교 교사?번역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다가, 1958년 비로소 모스크바에 돌아갈 수 있는 공식 허가를 받은 뒤부터 남편의 복권과 시집 출판을 위해 힘썼다. 1979년 오십 만델슈탐의 작품 원고를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에 기증하고, 1980년 모스크바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81세의 나이로 숨진다. 나데쥬다 만델슈탐은 남편의 작품을 필사하여 지기들에게 계속 나누어주는 방식으로 ‘인민의 적’의 미발표 원고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았고, 모든 원고들이 압수당할 경우를 대비하여 작품의 대부분을 끊임없이 암기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나데쥬다는 남편의 생애와 창작에 관한 두 편의 회고록을 1960년대에서 1970대 초까지 장장 10넌여에 걸쳐 집필했다. 러시아에서는 오랫동안 출판되지 못한 채 필사본 형태로 읽혔다. 반면 서구에서는 1970년대 초 영문판과 러시아판으로 동시에 출판되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켜, 이때부터 시인 만델슈탐에 대한 재조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녀의 회고록은 만델슈탐의 작품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참고문헌이자 대규모 숙청이 자행된 스탈린 시대에 관한 생생한 기록이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이오시프 브로드스키는 그녀의 『회상』을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라고 일컬었을 정도로, 이 작품은 많은 작가와 문학연구가로부터 높이 평가받고 있다. ![]() ![]()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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