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입시학원에서 십 수 년간 영어를 가르치며 진학 상담 및 학습 컨설팅 분야에서 다양한 노하우를 쌓았다. 속 깊고 마음은 따뜻하지만 세상 그 누구에게도 할 말은 하는 직설화법의 소유자, 강의를 할 때는 단지 독해나 해설 수준이 아니라 배경지식까지도 이해시키고야 마는 정통파 강사로 정평이 나 있다. 저서로 , 가 있다.
나는 왜 이 책을 썼는가?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다. 영어를 가르치며 입시를 지도한다. 10년 넘게 수험생들과 울고 웃으며 살아왔고, 올해도 그렇게 지내고 있다. 그런데 올해 나와 학생들 모두의 생활이 달라졌다. 수험생과 교사?강사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EBS 교재들 때문이다.
“선생님. 이거 답 없는 문제죠?”
아이들이 내게 와 묻는다. 내가 봐도 이건 답이 없다. 왜냐하면 need to(필요하다)를 ‘하고 싶어한다’로 착각한 사람이 문제를 출제했기 때문이다. 둘은 완전히 다른 의미인데, 예를 들어 많은 이들이 담배를 끊을 필요가 있지만 금연을 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need와 want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 이가 책을 만들고, 그 책에서 수능을 출제한다고 한다.
부산은 항구다. 인천은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만일 학생들이 배울 책에 부산과 인천과 목포가 내륙 지방이라는 내용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믿을 것인가? 이 믿기 힘든 일이 공공연히 등장하는 것이 EBS 수능 교재들이다. 심지어 의 어떤 문제는 바다에 인접한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가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한다. 우리는 여성이기 때문에, 출신 지역 때문에, 피부의 색깔 때문에, 키나 용모 때문에 차별받는 것을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EBS 교재에는 “공정함을 주장하면 타인의 사고에 의존하는 사람이 되니 불공정에 대해 문제제기하지 말라.”는 지문이 등장한다. 이런 궤변이 왜 교재에 등장해야 하는가? 이런 책이 ‘교재’, 즉 교육할 때 쓰는 물건일 수 있을까?
elfin, scaffolding, cave-riddled, umbrella term, mnemonic, deciduous, pare, no-holds-barred, come a cropper, muff, emblazon
이 단어 혹은 숙어들 중 하나라도 알고 있는가? 몰라도 창피해 할 필요 없다. 서울대 학생들 60명(인문대 50명, 의예과 10명)과 경희대 한의대 학생 10명, 총 70명 중 두 명 이하만 뜻을 아는 어휘들이다. muff와 emblazon은 단 한 명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EBS 을 만드신 분들은 이 단어들이 수능 필수 어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umbrella term과 mnemonic은 심지어 꼭 익히라고 추천하기까지 한다. 요컨대 EBS 교재들은 서울대생들과 경희대 한의대생들도 거의 모르는 어휘들을 수험생들에게 외우라고 강요한다.
EBS 수능 외국어영역 교재들은 오류의 집합소이며, 너무 어렵고 불필요한 어휘들의 쓰레기장이며, 그러므로 학생들의 고통의 근원이다. 그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나는 이 책을 썼다. 새로 책을 엮을 만큼 많은 오탈자()는 제쳐두고라도 납득이 가지 않는 문제가 너무나 많은, 출제자 자신도 이해 못하는 내용으로 가득한, 수능과 전혀 관계없는 어휘들로 얼룩진 이 교재들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의 동아줄이라는 상황을 나는 참을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겠지만 그 동아줄은 썩은 동아줄이고, 썩은 동아줄을 잡은 오누이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빠져, 출제나는 위기에 빠진 오누이(수험생들)가 짐승의 먹이가 되는 대신에, 빛나는 해와 달이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은, 논란의 중심에 있는 EBS 과 두 교재의 오류들에 대한 지적을 통해 그 교재들이 학습의 목표인 ‘정확한 지식의 습득’과 ‘사고력의 배양’을 얼마나 저해하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정답과 해설’이다. 또한 EBS 수능 연계라는 천박하고 불공정한 정책에 대한 도전장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수험생과 그 가족, 교육계 종사자뿐만 아니라 ‘교육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인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책이다.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한 학생의 아버지이다.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나는 학생들이 재미있게 공부하기를 원한다. 한 학생의 아버지인 나는 나의 아이의 행복을 바라고, 또 나와 혈연적 관계가 없는 학생들의 행복도 원한다. 그러므로 나는 왜 어떤 특정한 교재(그것도 오류로 가득한 교재)가 68만 명의 학생들의 필수품이 되어 그들의 불행을 조장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68만 명의 수험생, 그리고 136만 명의 학부모, 그리고 EBS 수능 연계 정책이 바뀌지 않는다면 또 다시 희생양이 될 수백만 명의 행복을 위해 나는 이 책을 썼다.
가끔 글이 격정적이거나 감정적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감정의 표출이 지금의 수험생과 교사들의 분노(EBS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글들을 본다면 공감하리라 믿는다.)에 비하면 매우 점잖은 표현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화낼 시간조차 아까운 그들의 목소리를 내가 조금이라도 대신하고 있는 것이라 이해해 주길 바란다. 또한, 이 책이 그들에게 위안보다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