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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작스(Hans Sachs)1494~1576. 독일의 시인, 극작가. 직업은 제화공의 마이스터. 뉘른베르크 출생. 7세에 고향의 교회 부속 라틴어학교에 들어가 8년 동안 신인문주의 교육을 받고, 1508년 15세에 졸업 후 제화공의 도제가 되어 구둣방에서 일했다. 1512년에 도제의 고용살이 기간이 끝나 유럽 각지로 편력 여행을 떠났다. 그 사이에 작시 수업에도 열중하고 마이스터징거의 모임에도 출입했다. 1516년 가을에 편력 여행을 마치고 귀향했으며, 1519년에 결혼하고 이듬해 1520년 1월에 제화공의 마이스터로 독립하였다. 일생 동안 뉘른베르크를 떠나지 않고 구두를 만드는 한편, 시작에 전념하였다. 당시의 독일에서는 종교개혁이 시작되고 있어, 작스는 개혁의 주도자 마르틴 루터의 사상에 깊이 빠져서 1523년에 ‘비텐베르크의 나이팅게일’이라는 500행 대서사시를 발표하여 루터를 찬양하였다. 이 시는 판을 거듭하여 한스 작스의 이름을 온 독일에 알리게 되었다. 작스는 1524년에 4편으로 된 ‘대화(對話)’를 발표하여 신교 보급에 기여했다. 그러나, 1527년 ‘교황제에 관한 이상야릇한 예언’으로 필화를 입어 시 당국으로부터 한때 출판 활동이 금지되었다. 1530년, ‘뉘른베르크시를 기리는 시’에 의해 창작 활동을 재개했다. 1560년 전후 작스는 자기 저작을 집대성하려고 ‘폴리오판 전집’ 3권을 출판하였다. 1566년부터 1567년에 걸쳐 자서전적 시 ‘나의 시업의 모든 것’을 지었다. 1576년 1월 19일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뉘른베르크 시내의 성요한성당 묘지에 묻혔다. 작스는 일생 동안 4,374편의 마이스터 노래, 약 2,000의 축사가, 120 이상의 비희극、85편의 사육제극, 7편의 산문 대화를 남겼다. 작품의 주제는 루터 번역 성경의 한 절, 오랜 교회 제도에 대한 풍자, 시사적인 사건의 기록, 도덕적인 교훈을 담은 우화 등 다방면에 걸쳐 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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