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생으로 한의학 박사이자 동국대 한의대 겸임교수이다. 전남대 재학 시에 정신세계를 접하고, 동국대 한의대를 졸업하였다. 광주와 대구에서 진료하였고 현재 서울의 장자한의원에서 진료하면서 영성과 건강에 관한 저서를 집필중이다. 옮긴 책으로 에픽테투스의 《지혜로운 삶의 원칙》이 있다.
안녕하세요? 멀리멀리 여기까지 들여다 보아주신 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런 만남이 바로 인생의 놀라운 선물이 아니겠어요?
벌써 2년 반이나 지난 일입니다만, 경주에 살던 제 벗 이균형씨가 캐나다의 친구에게서 선물 받았다면서 번역을 권하며 찻잔 위로 건네준 게 바로 에픽테투스의 <Enchiridion>을 편역한 샤론 레벨의<Manual for Living>이었습니다. 그 벗은 제 번역을 기다리지 못하고 지금은 가족 모두가 인도로 떠나 살고 있습니다.
누구나 삶의 능선에서 부침과 변성의 계기가 되는 만남을 갖게 되지요. 책이든 사람이든 누군가와, 무엇인가와.
이 책에는 이성의 사랑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좀 차디찬 책이지요. 사랑해야할 대상이라면 자신의 이성판단과, 자신의 운명적 목표와, 자연의 질서와, 그리고 모두가 함께 나아가는 삶 뿐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생사를 불문하고 상황을 불문합니다. 그점에서는 참 뜨거운 책입니다.
'행복은 무엇인가, 그것은 평온 속의 만족이요, 자신만의 소중한 목표에 한걸음씩 다가간다는 것을 실감하는 즐거움이다. 평온과 만족은 어떻게 얻는가, 그것은 할 수있는 것을 힘껏 실행하는 것이며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을 끊어 버리는 기술을 연습하는 것이다. 그 기술의 내용은 무엇무엇인가?...' 등등에서.
에픽테투스의 <Discourses>는 적잖은 분량의 아주 치열한 자문자답의 논설인데 그것을 줄인 것이 <Enchiridion>이고 2천년 동안 여러 언어, 여러 형태로 유포되어 내려와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원래가 글이 아니라 말이므로 좀더 생생하고 직접적으로 느껴지지요. 그렇지 않더라신다면 그건 분명 번역의 탓이겠지요.
사 보시기 전에 일별을 원하신다면 다음의 페이지를 펼쳐 보십시요. 21-23, 26, 30, 33, 37, 42, 49-50, 57, 63, 64, 67, 72-75, 77, 79, 82-88, 131. 어쩐지 동양의 지혜의 향기가 나지 않습니까? 한 편의 시나 한가락의 노래같지 않습니까?
노자 장자의 역설은 없어도, 법구경의 구경각의 경계는 아니라도, 그리스도의 구원과 보장은 아직 보이지않는다 하더라도, 이 역시 우리네 나날의 삶에서 찾고 있는 '소요유'의 노래요, 거대한 현대의 물살 속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천직에 대한 적극적인 동의를 통한 '깨달음'이요, 궁극적인 신의 사랑을 예감하는 하나의 '시편'이 아니겠습니까?
이쯤이면 역자로서 분명 지나친 자찬이 되는 줄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받은 이익의 감사함을 나누고 싶은 것도 인지상정의 발로가 아닙니까? 하나의 촛불이 자신이 타지 않는데 어떻게 남을 불붙여 타오르게 하겠습니까? 저 자신은 이책의 제목을 '또다른 사랑'이라고 하고 싶었답니다.
끝까지 보아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바라옵건데 그 끈기로 한번 서점에 들러 주시기를. 내친김에 한 마디 조언과 격려까지 부탁드리오며. 마지막으로, 귀한 서평을 맨처음 올려 주신 최석환님께 깊은 감사를 보냅니다.
(2002년 4월 9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