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에서 ‘문화’를 별도의 코드로 삼아 연구하는 방향을 잡게 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지방에서 중소 규모의 사립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란 간판을 계속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된 사정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취업 실적을 대학 평가의 중요 잣대로 삼는 상황에서 2004년 ‘한국어문학전공’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전공’ 트랙을 넣어서 ‘한국어문학부’로 발 빠르게 변신했다가 2014년 CK-1 다문화창의인재양성사업단에 선정되면서 ‘다문화교육전공’ 트랙까지 추가하여 ‘한국어문화학부’로 규모를 키우는 동시에 학과 특성화를 진행했다. 한국어에서 한국어교육, 한국문학에서 한국문화와 다문화로 범위를 확대하면서도 전자보다 후자로 점차 방향 전환이 이루어지는 추세로 나아갔다. 이때부터 나의 현대시 연구도 ‘문화’와의 관련 문제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다문화와 관련하여,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시를 썼던 시인들과 중국 체험이나 체류 경험을 가진 시인들의 시에서 일본문화나 중국문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수용하고자 했는지를 시 작품을 통해 추적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그것들이 이 책에 수록된 「주요한의 상해시절 시와 이중적 글쓰기의 문제」, 「정지용 초기 시의 일본문화 수용과 문화의식」, 「백석 시의 중국문화 수용과 문화의식」이다. 또한, 공교롭게도 주요한, 정지용, 백석 시에서 공통적으로 인력거 또는 마차의 심상이 시의 중심 이미지로 나타나기에, 이들 시 작품들을 대상으로 세 시인의 경우를 비교하여 문화 심상을 통한 문화의식의 문제를 집중 검토한 글이 「‘인력거’와 ‘마차’의 시적 수용과 문화 심상의 의미」이다. 「‘촛불’의 상상력과 의식지향성」은 좀 유별난 상황에서 쓴 것이다. ‘촛불’에 관한 정치적 관심들이 난무할 때, 나에게는 엉뚱하게도 ‘촛불’에 대한 문학적 관심이 발동했다. 일제강점기의 시에서 ‘촛불’의 심상이 나타난 작품들을 찾아서 그것들이 어떤 의식지향성을 보여주는지 바슐라르의 현상학적 통찰을 통해 파악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