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공엔 틈새가 숨어 있습니다. 불규칙적인 흐름과 정지, 공백과 벽이 무한교체 되는 틈새죠. 틈새를 보는 마음을 기르면 우리 생의 한계가 확장되어 질서가 다른 가려진 세상을 엿볼 수 있을 거예요. 적막한 생의 어느 표백된 시간에 눈을 뜬 채 눈 아닌 눈을 들고 아득한 곳으로 실려 가는 기묘한 찰나 속에서.
꽃 모자 쓰고 노래하는 기분일 땐 그림이 힘차고, 조울증의 롤러코스터에 시달릴 땐, 복잡하며, 서럽고 맘 가는 대로 그리는 그림은 산만하지만 어릴 때 땅에 그릴 때처럼 신났습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은 자기 이야기를 말해줄 사람을 기다린다는군요. 심해와 구름 뒤, 시공의 가장자리에서 얼핏 엿보인 또 다른 세상과 울고 웃는 남녀, 떠도는 말들이 저를 홀립니다. 이 책은 그들 속삭임의 첫 묶음입니다.
날 찾아와 줘서 고마워, 차갑고 따뜻한 그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