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내 독재 정권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에, 독재 세상이 다시는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옛이야기 공부 모임 ‘팥죽할머니’와 ‘어린이 논픽션 공부 모임’에서 활동하며 블로그 ‘오른발왼발(childweb.tstory.com)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 《어린이가 안전할 권리》, 《민주주의와 선거》, 《하나뿐인 생명의 가치 있는 삶과 죽음》, 《여자답게? 나답게!》, 《신기한 이야기 반점》, 《책 빌리러 왔어요》, 《투명 친구 진짜 친구》, 《삼 대째 내려온 불씨》, 《재주 많은 오형제》, 《방정환과 어린이날 선언문》, 《방정환-어린이 세상을 꿈꾸다》 등이 있습니다.
1987년 6월민주항쟁의 정신은 지금도 진행 중!
“호헌 철폐!” “독재 타도!” 1987년 6월,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갈망하며 모두 힘을 모아 외쳤어요. 6월민주항쟁으로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에 한 걸음 더 다가섰어요. 사실 민주주의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에요. 한 가지 민주화가 이루어지면 민주화되지 않은 부분이 눈에 띄게 되고, 그럼 다시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거지요. 그러니 민주주의는 끊임없는 진행형인 셈이지요. 우리가 민주주의를 계속 외쳐야 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어요.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1987년 6월민주항쟁의 정신이랍니다.
수상한 죽음, 그리고 밝혀진 진실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갔던 서울대생 박종철이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지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탁자를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져 죽었다.” 경찰은 어이없는 변명으로 고문치사 사건을 감추려고 했지만, 부검의와 신문기자 등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납니다. 자식을 둔 어머니들을 비롯한 많은 시민이 분노하며 일어섰고, 박종철을 추모하는 집회가 전국에서 열렸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의 탄압으로 꽁꽁 얼어붙어 있던 대한민국에 박종철의 죽음이 작은 불씨가 되어 6월민주항쟁의 불길로 번져 갔습니다.
호헌 철폐 투쟁과 이한열 최루탄 피격 사건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정권은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며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에 찬물을 끼얹습니다. 하지만 시민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 박종철을 추모하던 집회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되었고,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발족하며 6월 10일 전국적인 국민대회를 열기로 합니다. 하지만 국민대회를 하루 앞둔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쓰러집니다. 이한열의 최루탄 피격 소식은 시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했고,
결국 6·10 국민대회는 경찰의 원천 봉쇄 속에서도 서울을 비롯한 전국 20여 개 지역에서 수많은 시민의 참여로 열립니다.
6월민주항쟁, 시민의 승리
1987년 6월 29일, 시민들의 거대한 저항에 맞닥뜨린 군사독재 정권은 결국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는 6·29 선언을 발표하며 항복합니다. 학생들을 비롯한 교수, 종교 지도자, 어머니들, 넥타이를 맨 직장인 등 모든 시민이 한마음으로 일어나 저항한 결과입니다. 두 대학생의 죽음이 작은 불씨가 되어 일어난 6월민주항쟁이 시민혁명으로 완성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비록 야당 후보의 분열로 정권 교체까지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6월민주항쟁 덕분에 우리나라는 민주화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6월민주항쟁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불의와 독재에 저항하는 시민 정신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