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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권문해

출생:1534년

최근작
2013년 8월 <대동운부군옥 (천줄읽기)>

권문해

자는 호원(灝元), 호는 초간(草澗)이다. 1534년 지금의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태어났다. 19세 되던 해 가을에 진사시에서 일등을 차지했다. 20세 되던 해에 부인 곽씨를 맞았다. 23세 되던 해 봄에 퇴계 이황을 한서암(寒棲庵)에서 뵙고, 그곳에 머물며 배우기를 청했다. 퇴계와의 만남은 그의 생애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오랫동안 직접 가르침을 받으며 학문을 하는 큰 방도에 대해 들었고, 여러 군자들과 함께 절차탁마했다. 29세 때도 우계 가에 있는 서재로 가서 퇴계를 뵙고 학문을 배우며 한 달간 머물렀다. 37세 되던 해 9월에 김부륜(金富倫)·김부필(金富弼) 등과 함께 도산으로 가서 퇴계를 배알했다. 10월에 퇴계 선생이 돌아가자 곡했다.

40세 되던 해 정월에 안동 부사에 제수되었다. ≪연보≫에 따르면 그가 부모님을 모시기에 편하도록 외직을 구했다고 했으나, 퇴계의 제자로서 퇴계의 선양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연보≫에 의하면 몽재(蒙齋) 이안도(李安道)가 와서 퇴계 선생의 묘비에 관한 일을 의론했고, 3월에 여강(廬江)으로 가서 퇴계 선생의 사원을 지었다. 이 일은 비교적 빨리 진행되어 1년 뒤에는 묘우(廟宇)와 재당(齋堂)이 거의 이루어졌다. 이후 9월에는 도산에 모여서 여러 벗들과 서원을 짓는 제반에 대해 의논했다고 했다.

그의 나이 58세 때인 1591년 윤2월 사간원 사간에 제배되었다. 그는 사간에 제배된 뒤에 가장 먼저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과 정철(鄭澈)이 천단(擅斷)하는 죄를 탄핵했다. 양사에서는 이를 계기로 잇따라 논의를 일으켜, 마침내 그는 갑산에 귀양 가게 되었다. 그러나 곧바로 성균관 사예로 바뀌었고, 3월에 사복시정에 제수되었으며, 6월에 사헌부 집의에 제배되었다.

7월에 통정대부에 오르고, 승정원 동부승지에 제배되었다가 우부승지로 승진했고, 8월에 좌부승지로 승진했다. 사표를 올리고 예천으로 부모를 뵈러 갔더니, 용천위 상호군이 더해졌다. 초간정사에 있었다. 9월에 조정으로 돌아와 우부승지에 제배되었다. 19일에 또 좌부승지로 승진했다. 11월에 다시 부제학 물망에 올랐다. 그때 어머니를 모시기에 편하다는 점을 들어 여러 차례 외직을 구했으나 이부에서 다시 부제학 의망(擬望)에 올렸다. 한음 이덕형도 “이 사람을 외직에 보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끝내 더 이상의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1591년년 12월 9일 부호군(副護軍)으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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