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을 동경하지만, 현실은 심한 맥시멀리스트. 배우고 익히는 것을 좋아하며, 매일의 일정이 다채로워 요일마다 다른 가방이 필요한 사람. 《눈물이 방울방울 아름다운 꽃이야기》와 《기록은 힘이 세다》라는 단 두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을 산 경험이 있다. 책 속의 길만 파다가 이제는 햇빛 비치는 길로 나서려는 결심을 한 사람이다.
기록을 통해 만나는 과거와 현재
여러분은 텔레비전에서 사극을 즐겨 보는 편인가요? 어쩌다 텔레비전 사극을 보게 되었을 때 등장인물이 입은 옷을 유심히 본 적 있나요? 그럼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했느냐에 따라서 등장인물의 패션이 확 달라진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거예요.
그런데 수백 년, 수천 년 전에 조상들이 입던 옷을 도대체 어떻게 알고 만들어 냈을까요? 당연히 디자이너의 상상력이 더해졌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디자이너라고 해도 시대별로 다르고, 등장인물의 신분에 따라 달랐던 옷을 순전히 상상만으로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거예요.
그건 바로 우리 조상들이 남긴 ‘기록’ 덕분이랍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집에 살고, 무엇을 먹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글과 그림으로 남아 있기에 우리가 그 시대를 제대로 상상할 수 있는 것이지요. 역사의 기록을 통한 고증 과정을 거쳐서 옷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김유신이나 왕건, 세종대왕 같은 역할을 맡은 인물들이 더욱 실감나는 연기를 할 수 있는 것이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참으로 충실하게 수많은 기록들을 남겨 놓았어요. 삼국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보여 주는 무덤들부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으로 인정받은《직지심체요절》, 조선 시대의 정치, 법률, 군사, 외교 등을 충실히 기록한 거대한 역사책 《조선왕조실록》과 그리고 600여 년의 조선 왕실의 생활을 그림으로 표현한 《의궤》에 이르기까지. 우리뿐 아니라, 이것을 본 세계인들은 엄청난 찬탄과 경이감을 표현하기도 하지요.
오래 전에 이 땅에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수많은 흔적과 기록으로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소곤소곤 이야기를 건네고 있어요. 우리는 그 기록들 속에서 옛 사람들의 삶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이 꿈꾸었던 희망과 이상을 엿보기도 하지요.
조선 시대 속담 중에 “총명이 무딘 붓보다 못하다.”라는 말이 있어요. 총명하여 제아무리 기억력이 좋다고 해도 무딘 붓으로 그때그때 기록해 두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랍니다. ‘둔한 붓’으로나마 기록을 남겨서 후세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던 조상들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주지요.
참,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어요. 역사적 기록 그 자체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지요. 기록을 통해 지난 역사와 만나되, 그 과거의 역사를 오늘에 비추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점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왕성한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기록 속에 담겨 있는 삶이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나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 진하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거기서 내일을 열어 갈 지혜와 용기를 얻는다면 더욱 좋겠지요.
자, 이제 그 생생한 기록의 현장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 볼까요?